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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얼 May 17. 2016

<얼굴도둑>

없는 듯 하지만 거기에 있어

(스포일러 있음)


<클랜>과 마찬가지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보고 곧 개봉할 줄 알고 전주에서는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세바스티앙은 부동산 중개업자로 살아간다.

그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엄청난 기억 능력을 가진 세바스티앙은 그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

본인이 중개한 사람을 관찰하고, 그의 삶을 살아간다.

그가 다른 이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온전히 그일 수 있으며 그가 등장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그러다 그 사람을 아는 누군가와 마주치게 되면, 그 삶은 파괴한다.

그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몽탈트의 집을 의뢰받게 되고 그의 모습과도 약간은 닮은 몽탈트로의 삶을 꿈꾼다.

그러다 예상치 못하게 몽탈트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고, 몽탈트에게 들키진 않았지만, 그의 옛 연인과 마주치게 된다. 

그의 원칙대로라면 그 상황에서 도망쳐야 했지만, 그녀와 마주 앉아 아들 뱅상의 얘기까지 듣는다.

그는 몽탈트의 집을 옮겨다 놓은 자신의 작업실은 망가뜨리지만, 몽탈트의 삶에 대한 욕심은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그의 아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행동으로 그의 옛 연인이 진짜 몽탈트를 찾아오게 되고 그의 대응은 점점 대담해진다.

몽탈트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집으로 그녀와 아들 뱅상을 초대하는데, 몽탈트는 집에 없는 것이 아니라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그와 동시에 그녀와 뱅상이 도착하고 그는 진짜 몽탈트의 삶을 살기로 한다.

세바스티앙의 삶을 파괴한다.


없는 듯하지만 거기에 있어


자신의 삶을 파괴했고, 진짜 가족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자신과 닮았으나 매우 다른 몽탈트의 삶을 원한다.

자살사건이 경찰에 조사되고 그는 용의자가 된다.

세바스티앙은 도망치지 않고 몽탈트에게 지워진 그의 벌까지도 가진 후에야 만족한다.

진짜 몽탈트의 삶을 산다.


소재 자체도 굉장히 흥미롭고 거기에 배우의 연기가 좋다.

거기에 계속해서 끝을 예상해보지만, 결국엔 다른 결말이다.

하지만 그 결말을 매우 극적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담담하다.

무심하게 툭.

하지만 그렇게 툭 던진 결말이 일고 오는 파장은 크다.


다른 사람들과 돈독한 삶을 살진 않았어도, 그렇다고 부족한 삶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바스티앙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삶에서 가장 큰 만족을 느꼈다.

'삶이 익숙하지 않아서 자꾸 남의 삶을 복제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는 그것보다 그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 다른 이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느끼고 거기에 자신을 채워 넣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조용히 그런 삶을 살아왔지만, 이번엔 그의 삶의 방식까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한다.

그런 몽탈트의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영화에서도 몽탈트의 인터뷰로 인용되는 말이 있다.


우린 이미 큰 확률을 뛰어넘고 태어났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자주 좌절하지만, 우린 엄청난 확률을 뛰어넘고 태어났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고 주어진 로또 같은 삶을 우리 대부분은 견디어 내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과는 달리 세바스티앙은 다른 방식으로 그만의 삶을 견뎌낸다.

그 대가로 감옥에서 10년 있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


그는 진짜 몽탈트가 되었다.

완벽하게.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벌까지도 가진 후에야 만족하는 세바스티앙.

남은 평생을 역할극 하듯 살아야 하니 누구보다 만족한 삶을 살 것이다.


세바스티앙은 누구보다 개인적이었기에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

자신은 다른 형태로 살아갈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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