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의 대명사
이미 소설 베스트셀러인 <오베라는 남자>가 영화로 나왔다.
소설도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꼭 읽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영화가 개봉해있었다.
그래서 그냥 영화를 먼저 보기로 함.
(역시 미루는 습관은 어디 가지 않는다. 영화를 본 지도 얼마나 됐더라?)
츤데레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그동안 몰랐다면 <오베라는 남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베는 가히 츤데레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츤데레
겉으로 퉁명스럽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뜻의 신조어다.
서울신문 2015.12.08.
영화의 매력은 초반에 있지 않나 싶다.
오베가 하늘에 있는 아내 소냐 곁으로 가려 자살시도를 할 때마다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려 도움을 요청한다.
죽는 것조차 오베에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계속되는 반복으로 자살시도지만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의지 넘치게 도전하지만 실패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멈추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그의 사랑 소냐 옆으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
소냐를 잃은 것은 오베에게 모든 것을 잃은 것이었다.
어쩜 저렇게까지 지극정성일까 싶다.
다른 사람들에겐 괴팍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게 더 크게 보인다.
사실 괴팍이 아닐 수 있다.
오베는 그저 원칙과 규칙을 지키고 싶은 것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화가 날 뿐이다.
날 이해해주던 소냐도 곁에 없다.
남보다 조금 큰 심장으로 아직도 소냐에게만 빠져있는 오베.
누가 날 저렇게까지 좋아해 줄 수 있을까.
차가운 도시 남자.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겠지.
소냐에겐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남자.
나도 저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
스웨덴의 공동체를 간접 경험해 볼 수 있고, 복지라는 좋은 제도 뒤의 모순에 대해서도 슬쩍 볼 수 있었다.
어느 곳에나 빛과 어둠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