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siantak Dec 17. 2020

스피노자의 사과(긍정)를 생각하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이겨라

“전등 스위치를 켠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동안 소비할 때마다 ‘없음’의 스위치를 켠 셈이에요. 그 결과 부정적 감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거죠. ‘있음’의 감정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고요. 반면 Having 스위치를 켜자 그에 맞는 긍정적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거랍니다. 이 차이가 만드는 변화를 안다면 놀랄 수밖에 없을 거예요.” 


2020년 예스 24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더 해빙 The Having’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 또한 ‘없음’의 스위치가 먼저 켜진 상태로 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차 없이 부정적 생각이 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만다. 침울, 불안, 의기소침, 이런 부정적 감정들이 나의 뇌에 성벽을 쌓고 긍정적 감정의 유입 시도를 막아버린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어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나는 꼭 한 번은 러시아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2년간 공부할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시험에 응시하기로 마음먹고 도전을 했다. 사실 선발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1년 과정의 전문교육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선발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수강해야 하는 수업 불참을 해야 했다. 토론 수업이 많던 수업이어서 수업 불참은 큰 감점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기회를 놓치면 러시아 교육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했다. 결국 최종 면접시험에서 선배와 경쟁하여 탈락되고 말았다. 선발시험도 탈락하고 수업 불참에 따른 감점도 받는 설상가상의 상태. 나는 1년 교육 과정에서 결국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선발시험 응시로 인한 감점이 주원인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성적을 확인하던 날 나는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나의 미래는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교육 수료 후 근무지에 갔는데 그 교육성적은 나를 계속 따라왔다. ‘별로 공부를 못했네’ 상급자들에게 비친 나의 첫인상이 그랬다. 거기에 나의 10년간의 근무 경험은 더욱더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나를 데리고 일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일할 곳에 배치되었지만. 이때부터 나는 절실해졌다.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불안감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어’ 그때부터 모르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보다 후배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가며 업무를 추진해 나갔다. 딱 3개월을 그렇게 미쳤다. 그리고 상급자가 고민하던 과업을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서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나에 대한 평가가 불신에서 신뢰로 돌아왔다. 나도 스스에게 칭찬했다. ‘잘했어. 잘 버텼어. 더 잘 될 거야’ 돌이켜보건대 나는 할 수 ‘있음’의 스위치를 켜는 순간부터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우리는 항상 ‘있음’과 ‘없음’의 경계지대를 걷다가 어느 순간 한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 선택의 순간에 더 나은 결정을 위해서는 ‘있음’의 스위가 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긍정의 마인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이 말은 정확히 스피노자가 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어쨌든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고 이 글이 지금도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누가 말했느냐의 논쟁을 떠나 긍정적 생각에 대한 대표적 표현으로 인용함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긍정적 마인드의 힘

어릴 때 우리 집의 가훈은 ‘金力’이었다. 아버지께서 농촌에서 살면서 느끼실 때 잘 살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어떤 힘이 필요하셨나 보다. 力, 어떤 힘이 필요했을까? 아버지의 의중은 잘 알 수 없지만, 나는 다음 세대에게 ‘통찰력’을 얘기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펜데믹에 이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듯 불확실한 세계의 움직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특히 어느 조직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물론 각 개인도 각자의 미래를 위해 통찰력이 절실하다. 백의종군 후 삼도수군 통제가로 재임용되어 왔을 때 비참한 수군의 모습을 본 이순신 장군. 그도 인간이었기에 수군을 포기하라는 조종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는 선택이 달랐다. 어디서 싸워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정적인 조정의 의견에 이순신 장군은 긍정적 답변을 내놓았다.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이후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준비하였고 결과도 긍정적일 것으로 믿고 싸움에 임했던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결과는 대승이었다. 

긍정의 마인드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1975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을 불러서 중동국가에서 건설공사를 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의 이야기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중동에 다녀온 정 회장의 보고는 달랐다.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1년 열두 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 물은 어디서든 실어오면 되고, 50도나 되는 더위는 낮에는 자고 밤에 시원해지면 그때 일하면 되었다. 중동 붐은 이렇게 한 사람의 긍정적 마인드에게 시작되었다. 


리더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희망의 미래를 찾고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위해 예측불허, 변화무쌍한 현실의 바다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이겨야 하는 것이 리더의 자세가 필요하다. 발명왕 에디슨은 말했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작동하지 않는 방법 10,000가지를 찾아냈을 뿐이다.” 이 또한 Having 스위치를 켜서 세상을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오게 만든 결과물을 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긍정적 마인드의 힘이다. 그래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리더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무장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리더십의 사각지대를 찾아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