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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iantak Dec 18. 2020

아팠던 20대의 삶, 성장으로 답하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길 말고 나를 위한 성공길을 찾아라

아팠던 20대


나의 20대 삶은 많이 아팠다. 그리고 아들들의 10대, 20대의 삶에 동행하며 MZ세대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때론 길고 어두운 터널과 같았고, 때론 외나무다리 같은 외길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눈을 팔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었다. 그렇게 외롭고 두려운 길을 걸어온지 30년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길을 걷고 있다. 조금은 안전해졌지만. 나의 20대는 1990년대다. 그때 20대로서 20대들과 부딪혀가며 겪었던 시간들은 나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단련시키고 성장시켰다. 2020년은 50대가 되었다. 50대로서 20대 청년들을 바라보며 가끔 나의 20대를 회상해 보곤 한다. '나도 저 나이 때 저랬을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니 내가 나를 바라볼 여유도 없이 질주했기에 알 수 없다고 말해야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책임질 수 없는 생각들이 스쳐간다. 그렇다고 이 시대 청년들에게 나처럼 살아보라고 말할 수 없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 길을 우직하게 걸었다고 해서 청년들에게 나처럼 한 길을 평생 걸어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나의 20대 삶을 통해, 그리고 20대 청년들과 함께 10년 단위의 삶을 3번 살아 본 나로서 청년들에게 할 말이 있다.


허상의 성공길을 앞에서


앞에서 나의 20대 삶은 많이 아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성공길을 걸어가 보려다가 20대 청춘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 성공길은 허상이었고, 추락하는 길이었다. 20대 어느 날 저녁, 나는 차량들이 씽씽 달리는 2차선 도로 위에 술에 만취되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아니 하늘을 지붕 삼고 도로를 침대 삼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의 편안한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많은 차량들이 나를 피해 다녔다. 어떤 차들은 나의 잠자리를 방해라도 하려는 듯이 굉음을 내기도 했다. 다행히도 차량들은 도로에 쓰러져 자고 있는 내 앞에서 급정지를 했다. 잘도 피해 갔다. 마치 도로에 죽어 쓰러져 있는 고라니나 고양이를 피해 가듯 지나갔다. 그 수많은 차들 중에 도로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던 차량이 있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아니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하늘이 도왔다. 이것을 행운이라고 하는 걸까? 평생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하다. 이 순간에도 그때를 생각하니 감사함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런 삶의 절벽에 서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구해 주었다. 다음 날에 나를 구해 주신 분을 찾아 나섰다. 마지막 기억의 장소로 갔다. 그곳에서 가게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어젯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그분으로부터 생생한 상황 설명을 들었고 감사함을 전했다. 너무나 많이 마신 술 때문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숙소로 가는 도중 도로에서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청춘의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성공하려면 남자는 술을 잘 마셔야 된다는 말에 내가 감당도 할 수 없는 미친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하려다가 성공은커녕 죽을 뻔했다. 그때 알았다. 이런 성공길은 내가 갈길이 아니라는 것을. 남들이 말하는 성공길이 아닌 나에게 맞는 성공길, 나에게 열려 있는 성공길을 찾고 싶었다.


행복한 성공을 향한 발걸음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다시는 추락하지 않으려고 나에 대해 정확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 간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좌충우돌하며 배웠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성공을 향한 길보다 행복을 향한 길을 걷고 있었다. '행복한 성공'을 이루고 싶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전진하는 것뿐이었다. 행복한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각종 유혹들로부터 나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그것들 앞에 단호해졌다. 오직 나를 목표까지 안전하게 이끌어 줄 것에 투자했다. 독하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위기의 순간도, 아픔의 나날도 많이 있었지만 오직 목표를 보고 왔기에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미생인 20대 청춘의 삶을 누가 이끌어 주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20대에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면 30대 이후는 방황이다. 다행히 나는 큰 깨달음을 통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아픈 만큼 성장해서 다행인 50대가 되어 이제는 20대들에게 청춘의 길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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