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참 이상하다. 매일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사람들과 이제는 만나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 드는 감정. 이 감정을 누가 괜찮다고 했던가?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수많은 이별을 할 때마다 괜찮지가 않다. 겉으로는 내일 다시 볼 수 있을 것처럼 표정관리를 하지만 내심 아쉬움과 슬픔의 감정이 강물이 되어 흐른다. 오늘 아침, 2년간 함께 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들도 아쉬웠는지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곧 시들어 버릴 꽃을 뭐하러 샀을까 하고 자세히 보니 생화가 아니었다. 그들과의 추억을 오랫동안 기억해 달라는 의미에서인지 비누꽃 바구니 었다. 그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니 더욱 내 마음이 착잡했다. 속에서는 울음이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감정선을 넘지 마' 이성이 감성을 억누르고 있다. 그래서 감정을 자극하는 말은 삼가고 극히 상투적인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재빨리 꽃바구니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더 이상의 감정의 교류가 지속되면 나도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매정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왜 이리 힘들게 살까? 그냥 감정 따라 살면 안 되는 걸까?
웃으며 헤어지고 싶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별의 순간마다 이렇게 지내온 것 같다. 내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억제하며 살아왔다. 작별 인사를 길게 하다 보면 감정을 자극하는 말에 걸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작별인사는 짧게 한다. 웃으면서 헤어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작별인사를 하다가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끝까지 말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준비한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어 더 이상 인사를 할 수 없어 적어 놓은 인사말을 다른 사람을 시키기도 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훈훈했다. '정말 정이 많이 들었나 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으면 저럴까?'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이별의 순간에 한 번도 울지 않은 나는 정이 없던지,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울지 않으련다. 웃으며 헤어지고 싶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웃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물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
나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TV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누나와 나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들과 영화관에서 또는 집에서 영화를 볼 때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제는 아이들도 어떤 장면에서 아빠가 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는 내 감정이 고조되어 눈물샘이 터질 때쯤이다. 이제는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억지로 숨기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가족들 앞에서는. 쳐다보는 가족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미소로 답해 준다. 눈물은 거짓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다.
"빛나던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하고 후배들이 불러주던 학생 시절이 있었다. 이때 졸업을 하는 우리는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하고 답가를 불렀다. 이 노래를 하면서 많은 졸업생들과 후배들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 선후배들끼리 무슨 정이 쌓였길래 졸업식에서 눈물바다를 만들어 냈는지 신기할 정도다. 요즘 학교 졸업식을 가보면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어수선하고 슬픔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많이 달라진 졸업식장의 모습에 어색하기도 하지만 요즘 세대들의 분위기라 생각했다.
이별에 익숙해지지 않을 때는 이별 대행 서비스?
근무지를 옮겨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었다. 한 번은 아내와 딸이 방문을 했다. 1박 2일을 함께 지내다가 가는데 차량이 안 보일 때쯤 몸은 이상반응을 일으켰다. 헤어진다는 사실이 감정을 자극하여 눈물샘을 채우고 있었다. 쓸쓸히 돌아서서 현관을 통해 거실에 들어오니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함께 했던 향기들이 느껴지면서도 곧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고독이 밀려왔다.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는 우리들의 인생. 이제는 적응할 만도 한데 내 나이 50이 되어도 적응이 안된다. 누군가 대신 이별을 해 준다면 어떨까?
'여기 이별 전문 대행업체 <도로나 이별 사무실>에서 당신이 끊어내고 싶은 모든 것들과 대신 이별해드립니다! 지금 바로 전화 주세요!'
손현주 장편소설에 나오는 <도로나 이별 사무실>에 찾아가 '이별 대행 서비스'를 신청하면 이별에 익숙해지지 않은 나에게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