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으로 근무지를 옮긴 지 3주째가 되었다. 그동안 1월 중순이 되어도 눈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는데 오늘 눈이 내렸다.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보노라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목련나무다. 작년 4월에 꽃을 피우고 올해 4월 다시 꽃을 피울 준비를 한채 으엿하게, 때론 도도하게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 가지마다 붓 모양의 꽃눈이 달렸다. 얼마나 꽃을 일찍 피우고 싶은지 작년 가을에 이미 꽃눈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껏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화보다 더 빨리 개화하지 못할 줄 알면서 왜 잎보다 먼저 꽃눈을 준비했을까?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려고. 목련의 운명인가? 단순히 부지런해서인가? 혹시 인간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인가? 한 참을 목련나무의 꽃눈에 빠져 있었다. 시선 고정, 마음 고정! 어느덧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는데 안 추워?"
"......."
"왜 말이 없지? 겨울잠을 자는 거야?"
"......"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지금까지 목련의 꽃눈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무심한 나에게 대답을 해 줄리가 없었다. 내 수준은 때가 되어 꽃이 피면 그제야 목련의 존재를 알아보는 정도였으니까.
4월이 되어 목련꽃이 피면 "목련꽃그늘 아래서..." 노래를 부르며 걸었던 때가 있었다. 낭만적인 날들만은 아니었던 20대에 느끼던 목련꽃 피던 계절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의무적으로 불렀던 노래였는지 노래를 불렀다는 기억 말고는 별다른 추억은 없다. 물론 노래 가사를 몰라서 혼나기는 했던 것 같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날마다 목련나무의 꽃눈을 바라본다.4월의 목련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를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창 밖의 저 수많은 꽃눈 안에는 목련꽃의 4월의 꿈이 담겨 있겠지! 가까이 가 보았다. 꽃눈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붓을 닮은 꽃눈에는 털이 있었다. 부드러운 털의 느낌이 손을 통해 전달되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털옷을 입었나 보다. 비싼 모피코트를 입은 듯했다.그래서인지 추위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4월의 희망을 품고서.
얼마나 지났을까? 붓 모양의 꽃눈은 하얀 눈을 먹물 삼아 글을 써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한 글자 한 글자를 내 마음의 종이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꽃을 피우고 싶으면 꽃 봉오리를 준비하세요. 누구보다 더 빨리 꽃을 피우길 원한다면 더 일찍 꽃봉오리를 준비하세요. 더 진한 향기를 내뿜고 싶으면 더 혹독한 추위를 견뎌 내세요.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꽃이 피고 당신만의 향기를 뿜어낼 거예요. 나는 4월에 꽃을 피우기 위해 작년 가을부터 준비했어요. 희망은 기다릴 줄 알게 하고, 기다림은 희망을 가져다주지요."
젊었을 때 기억을 떠올려 본다. 한 겨울 그냥 버티기도 힘든데 얼음을 깨고 냉탕에 들어가 인간의 한계를 체험해야 했을 때도, 훈련이라는 목적 아래 배 고픔도 참아야 했던 그 순간에 쓰레기통에 버렸던 건빵을 다시 찾아 먹어야 했던 때도 내 마음 한가운데에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참을 수 있었다.
목련의 꽃눈이야기를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활짝 핀 목련꽃만을 기억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 목련꽃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하는 것이 꽃눈인 것을 모르고 지냈다니. 꽃이 지고 나면 꽃눈을 만들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다시 피어나는 목련꽃. 꽃으로 존재하는 시간보다 꽃눈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더 긴 목련. 그 과정이 아름답다. 그래서 목련꽃은 우리들의 삶을 닮은듯하다. 자기만의 때에 자기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몸부림과 인고의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인 목련. 그 목련이 나는 좋다. 그래서 나는 또 준비한다. 나만의 꿈을. 목련처럼 우리네 인생도 자기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꿈 봉우리를 일찍 만들어 준비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