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의 답은 예상했겠지만 ‘눈꺼풀’이다. 이토록 무거운 눈꺼풀을 75kg의 몸무게로 지탱하고 다닌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눈꺼풀이 내려올 때는 천하장사의 도움도 소용없다.
‘눈꺼풀 내려온다. 눈꺼풀이 내려온다. 깊은 잠 골짜기로 쌍 눈꺼풀이 내려온다. 눈은 초점을 잃고 눈꺼풀은 스르르르 내려오고 이내 어둠 속으로 빨려간다. 하늘도 사라지고 땅도 사라지니 무거운 머리만 꾸벅꾸벅하는구나.’
나는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잠이 많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걸어가면서도 두 눈을 감고 졸면서 걸어갔다. 이발하기 위해 이발소 의자에 앉혀 놓으면 어느새 잠을 자고 있고, 이발사가 이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꾸벅꾸벅했다. “이놈 뭐가 되려고 이렇게 잠만 자는고! 허참” 졸면서도 이발사 아저씨의 말이 들려왔다. 급기야 누군가 내 머리를 잡고 못 움직이게 하고서야 이발은 시작되었다. 진로를 확정하고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갈 때도 잠은 많았다. 그런데 잠을 이겨내지 못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알람시계를 의지해서 새벽을 깨웠다. 일어나서 책을 펴놓고 졸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노력했다는 위안이라고 할까.
아슬아슬한 잠보의 삶
이렇게 학생 시절을 보냈고, 결국 원했던 목표인 육사에 간신히 합격했다. 잠이 많았던 나로서는 육사에서도 해야 할 공부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을 감내해야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잠이 많은 것은 지속되었다. 특히 운전할 때 비 오듯 쏟아지는 졸음, 천근만근의 눈꺼풀이 사르르 내려온다. 혼자 운전할 때는 창문을 열고 소리도 쳐 본다. 과자, 껌 등 온갖 먹을거리를 먹으며 졸음을 쫓고 내려오는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려 보려고 애써본다. 40분 정도의 거리도 중간의 졸음쉼터를 이용해야만 할 정도다. 졸음쉼터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참 잘 만들었다. 그런데 졸음쉼터가 없던 오래 전의 한 여름날 토요일 오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나는 순간 졸음으로 중앙분리대를 ‘꽝’ 스치고 깜짝 놀라 갓길에 차를 세웠다. 다행히 그 순간 앞뒤에 차량이 없었다. 운전석에서 한참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와서 차량 외부를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차량 외부 손상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중앙분리대를 충격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아했지만 아무튼 다행으로 생각하고 가던 길을 조심해서 운전해 갔다. 나중에 차량을 자세히 보니 앞바퀴 휠이 닳아있었다. 중앙분리대에 바퀴 휠 부분이 닿았던 것 같다. 지금도 운전대를 잡으면 졸음이 걱정되는 게 현실이다. 가족과 함께 차량을 타고 갈 때는 모두가 긴장 아닌 긴장을 한다. 옆에 타는 아내는 쉬지도 못하고 운전하는 나를 감시한다. 운전하다 보면 나는 졸지 않았는데 “졸지 마요”한다. “안 졸았어요” 아무리 얘기해도 안 믿어 준다.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얘기하는 것인데 나는 애써 방어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잠시 후 머리를 긇기 시작하고 얼굴을 만지면서 졸음을 인정하고 만다. 이런 정도니 나 혼자 운전해서 다닐 때면 아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듯 참으로 잠이 많다. 생전에 잠과 무슨 원수가 졌나?
잠보가 잠을 포기하는 역설
이런 잠보가 공부를 할 때, 어떤 임무가 주어져서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될 때, 나는 과감히 잠을 포기한다. 통계적으로 인생 80년이 허락되었다면, 1/3인 26년을 잠을 잔다고 한다. 이렇게 과학적 근거를 통해 제시된 수면시간을 모두 자면서 내게 허락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성인 수면 권장시간 평균 7∼9시간을 지켜서 잔다면 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항상 갖고 살아간다. 평균 수면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 건강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기록들이 많음에도 내가 잠과의 싸움을 하는 이유다. 나는 잠 시간을 줄여, 그 시간에 내 기회를 찾아야 했다. 누구도 내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내 길을 닦아 주지 않는다. 내 생존법칙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었고, 그 시간을 사기 위해 일정의 잠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25년 이상을 잠과 싸우며 오게 되었다. 잠은 4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더 이상의 시간을 잠에 투자하는 것은 사치라 생각했다. 물론, 잠자는 시간은 개인별로 다를 것이다. 체력, 정신력,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신체리듬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부족한 잠은 주말을 통해 조금 보충한다. 잠 시간에서 얻어 낸 짬 시간은 보화와도 같다. 그 시간은 내 성장을 위해 온전히 투자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듯이 하루의 제일 먼저 얻어진 시간은 생각을 얻는 데 사용한다. 움직임이 없는 적막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배경 삼고 기도한다. 뇌라는 생각의 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에 반성하고 감사하며 필요한 생각을 받는 시간이다. 그 생각은 일상의 고민일 수 있고, 삶의 장애물에 대한 해결책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일 수도 있다. 이런 시간을 갖고 나면, 하루 중 제일 무겁고 중요한 일에 대해 핵을 치는 시간을 갖는다. 큰 줄기를 잡아 놓으면 하루가 윤활유를 발라 놓은 듯 부드럽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을 줄임으로 염려되는 건강과 지속력은 운동을 통해서 보완해 준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큰 병치레 없이 잘 지내왔다. 물론 이후의 건강을 자신할 수 없지만, 지속 관리해 나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 53세의 나이에 체력측정을 한 결과, 25세 이하의 체력측정 수준의 특급을 달성했다. 체력측정은 3 종목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3km 달리기를 한다. 내 나이 특급은 49개 이상, 60개 이상, 14:30초 이하면 전 종목 특급이다. 그런데 올해 측정 결과는 목표를 두고 연습을 한 결과 72개 이상, 86개 이상, 12:30초 이하를 달성했다. 25세 이하의 특급 수준을 달성한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체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지속 유지했던 결과였다. 잠을 줄이고 그 시간에 다른 노력을 한 결과들이다. 검이 짧으면 일보 전진하라고 했다. 동일한 시간을 가지고 내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하루를 먼저 시작하여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1mm라도 먼저 가고, 다가오는 미래를 1초라도 먼저 봐야 한다. 그것이 인생 정글에서의 생존법이다.
잠보다 보람
잠은 꿀이다. 꿀맛이 좋은데 잠을 포기한다면 인생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러나 나는 잠을 자는 것보다 그 시간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만족하다. 살아가는 느낌은 보람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