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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iantak Sep 25. 2020

리더의 눈물

리더의 착각 4

누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가? 이 말대로라면 나는 남자가 아닌 것이다. 셀 수 없이 눈물을 흘렸으니까.

태어나면서 ‘으앙∼’하고 울었고, 어릴 적에 누나와 풍선을 서로 가지려다가 뺏길 것 같아 울었다. 초등학교(옛날에는 초등학교였다) 졸업식 때 졸업가를 부르다가 흐르는 눈물, TV 드라마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이고 그 눈물을 다 담아내지 못해 결국 흘러내리고 말았던 순간들, 농촌에서 모내기를 하는 곳에 갔다가 거머리에 물려 “나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흘린 눈물, 아이들을 키우며 내 마음대로 안 되는 현실 앞에 자책하며 흘린 수많은 눈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좌절의 순간을 맞이하며 아내의 품에 안겨 흘린 눈물,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쫓겨나며 한적한 곳에서 흘린 눈물 등 너무 많아 기억에 다 담을 수 없는 눈물의 사연들이다.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서인지 남자가 흘려야 하는 눈물 중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불효자식인가? 눈물이 없으니 이 좋은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아니 망하지 않고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나라를 위한 기쁨의 눈물은 흘리고 싶다.

이 많은 눈물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나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벌어졌던 순간들을 기억할 때 눈물샘은 세상 밖으로 눈물을 보내지 않고 내 마음속으로 흘려보냈다. 그것도 뜨거운 눈물을.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무엇이라도 녹여버릴 온도, 내 육신이 녹아져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창피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눈물의 온도는 최고를 향해 계속 끓고 있었다. 이 눈물에 사라지고 말 순간을 위해 나는 그토록 힘겹고 어려운 삶의 길을 걸어왔단 말인가? 이대로는 안된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안된다. 살고 싶다. 좋은 날을 보고 싶다. 인내하고 포기하며 걸어왔던 삶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다.


1991년, 청년 리더의 길을 걷고 있던 어느 날이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성공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20대 청춘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 성공길은 허상이었고, 추락하는 길이었다. 20대 어느 날 저녁, 나는 차량들이 씽씽 달리는 2차선 도로 위에 아무 기억도 없이 누워 있었다. 술이 주범이었다. 만취 상태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학부시절 심리학 수업에서 베운 제로썸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도로에 누워 있었다. 죽음이 두려워서 차량보다 내가 먼저 피하는가, 아니면 차량이 피하는가? 다행히도 어둠 속을 차량 불빛에 의존해 운전하는 사람들은 심장이 약했다. 도로에 누워 있는 나를 보고 급정지를 하고 비켜서 지나갔다. 나의 승리였다. 그 모습은 마치 도로에 죽어 쓰러져 있는 고라니나 고양이를 발견하고 피해 가듯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수많은 차들 중에 도로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던 차량이 있었다면... 나는 죽고, 그 운전자는 교통사고로 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아니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하늘이 도왔다. 평생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하다. 이 순간에도 그때를 생각하니 감사함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어디서 모여들었을까? 죽음의 순간을 모면하고 있던 나를 누군가 발견하고 구해 주었다. 다음 날에 나를 구해 주신 분을 찾아가서 생생한 상황 설명을 들었고 감사함을 전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청춘의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고, 더 이상 눈물을 흘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 후로 나에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해 준다.


이순신 장군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삼경(三更·밤 12시 무렵)에 꿈을 꾸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오셔서… 완전히 평소와도 같은 모습이어서 이를 생각하며 홀로 앉았으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아들 면의 부고를 듣고 또 울었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을 죽여 울었다.’ 

인간 이순신 장군이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러니 나의 눈물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나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를 위해 울어 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든든한 위로자이며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위해 속으로 눈물을 흘렸던 나를 위로해 본다. 이제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지워버리자. 리더의 길을 가면서 울 수 있다면 많이 울자. 누가 리더는 울지 않아야 하고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던가?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제부터는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혼자서 울고, 모두와 함께 울자.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리더의 눈물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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