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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iantak Nov 21. 2020

하마터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뻔했다

분별력이라는 미덕을 잃으면 만용이 되어 버린다.

운명의 순간을 앞두고

乾坤一擲(건곤일척), 칠천량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일본군과 대패한 조선 수군의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지휘관을 교체했다.  매사에 너무 신중한 와키자카를 해임하고 대신 급류에 익숙하고 명령에 물불 안 가리는 ‘來島通總’(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이순신 장군과 대적할 함대 지휘관에  임명한 것이다. 구루지마는 원래 ‘四國’(시코쿠) 태생의 해적 출신이었고, 특히 그의 고향 ‘愛媛県’(에히메현) 앞바다는 모든 지형과 분위기가 명량 앞바다와 흡사하여 그에게는 마치 동네 앞 놀이터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증오심과 승리에 목말랐던 일본군부 입장에서는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신중형의 와키자카보다 일단 “예, 알겠습니다”식의 복종형 구루지마가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했었나 보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구루지마 대신 와키자카가 이순신 장군과 대적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상상에 맡긴다. 조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 일본군 내부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다. 전투의 순간도, 훈련 중인 것도 아니었다. 부대 단결을 위해 체육대회를 하던 날이었다. 나는 지휘관으로서 체육대회를 주관하며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갈 때쯤 계속 구경만 하고 있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함께 뛰고 싶어 졌다. 그래서 중대별 계주를 마친 다음에 마지막으로 계획에 없던 계주를 추가해서 한 번 더 했다. 나를 포함하여 한 팀을 더 만들었다. 나와 참모들도 최선을 다해 뛰었다. 이렇게 해서 두  번 뛴 참모들도 있었다. 이로써 모든 경기를 마치고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모두들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굽는 등 분주히 그리고 화기애애하게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 테이블에는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요 참모들이 시간이 넘었는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좀 이상하다 싶어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보고가 들어왔다. 어떤 참모는 계주 후 너무 힘들어서 소파에 누워 있고, 어떤 이는 구토 후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의무대에서 영양제 주사를 맞고 휴식 중이었다. 모두가 계주를 두 번이나 뛰면서 체력의 한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 보고를 받고 잠시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마터면 부하들을 죽일 뻔했구나’

모두가 즐겁자고 한 체육대회가 울음바다가 될 뻔했다. 다행히 모두들 회복을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부하들에게는 미안하고 하늘 앞에는 생명을 지켜 주심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 후부터는 절대로 내 기준에 맞춰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행하게 하는 것에 신중했다. 평소 체력관리를 잘해 오던 나로서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다른 이들은 내 생각만큼 체력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일을 할 때는 한 가지만 생각하고 판단하면 안 된다. 최소한 두 가지는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나만 생각하고 부하들의 처지와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부하들만 생각하고 상급부대나 상급자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적이나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의 입장과 능력만을 가지고 상황 판단을 한다면?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용맹이 한계를 넘어 분별력이라는 미덕을 잃으면 만용이 되어 버린다.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으려면 분별력이라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 생각이 자기 안에 갖춰 있으면 만용이 되기 쉬움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날이었다.


얼마 전 명량해전의 격전지 울돌목에 다녀왔다. 13:133이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사의 한 순간을 장식했던 곳이다. 임금을 비롯해서 모두가 반대했던 바다에서의 전쟁을 고집했던 이순신 장군은 만용이었을까? 하늘이 도와서 만용이 용맹으로 치장되었을까? 결코 아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의 상황과 울돌목이라는 지형, 그리고 일본 적장의 심리까지 읽고서 상황을 판단하였다. 칠천량 해전의 패배 후 남은 수군 전력만으로 모두가 반대한 해전을 결심했다면 오만이요 만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아군과 적군, 지형과 무형전투력까지를 고려했던 것이다. 그 결과 중과부적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부하들을 사지로 끌고 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사지를 생지로 만들어 냈다. 이것은 나를 버리고 우리를 생각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적장 구루지마는 어떠했는가? 숫적 우세의 전력을 믿고 돌진하다가 이순신 장군이 의도한 울돌목에서의 전투에 먹히고 말았던 것이다. 돌격형 구루지마는 그렇게 일본 수군을 사지로 몰고 들어 갔던 것이다. 하마터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뻔했던 과거의 나의 실수가 구루지마의 운명처럼 될 뻔했다. 이제는 이와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자세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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