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의 사과(유혹)를 주의하라 2
‘처음 원균이 한산도에 부임하고 나서 이순신이 시행하던 규정을 모두 변경하고, 부하 장수들과 사졸 가운데 이순신에게 신임을 받던 사람들을 모두 쫓아버렸다. 특히 이영남은 자신이 패전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더욱 미워했다. 군사들은 마음속으로 원균의 이러한 처사를 원망하고 분개했다.
이순신은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짓고 밤낮으로 그 안에 거쳐하면서 여러 장수와 전쟁에 관한 일을 함께 의논했는데, 비록 지위가 낮은 군졸일지라도 전쟁에 관한 일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찾아와서 말하게 함으로써 군중의 사정에 통달했으며, 매양 전쟁할 때마다 부하 장수들을 모두 불러 계책을 묻고 전략을 세운 후에 나가서 싸웠기 때문에 패전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원균은 자신이 사랑하는 첩과 운주당에 거처하며 울타리로 운주당의 안팎을 막아버려서 여러 장수가 그의 얼굴조차 보기 어렵게 되었다. 또 술을 즐겨서 날마다 주정을 부리고, 형벌을 쓰는 일에 법도가 없었다.
군중에서 가만히 수군거리기를 “만약 적병을 만나면 우리는 달아날 수밖에 없다”라고 했고, 여러 장수도 서로 원균을 비난하고 비웃으면서 또한 군사 일을 아뢰지 않아 그의 호령은 부하들에게 시행되지 않았다.’
‘15일 밤 10시에 왜선 5∼6척이 갑자기 기습해와서 조선의 전선 4척을 불 질러 전부 타버리자 우리 장병들은 허둥지둥 배를 부려 가까스로 진을 쳤습니다.
16일 새벽에는 왜선들이 헤아릴 수 없이 닥쳐와 서너 겹으로 에워싸며 형도(칠천도 서쪽 싸리 섬) 근처에 끝없이 깔리므로 우리는 싸우며 물러나며 도저히 당적 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성 땅 추원포로 물러났는데 적의 형세는 대단했고, 우리나라 전선들은 전부 불타고 깨어졌으며 모든 장수와 군졸도 불타 죽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신은 통제사 원균과 순천부사 우치적과 함께 몸을 뽑아 육지로 올라왔는데, 원균은 늙어서 걷지를 못하고 알몸뚱이로 칼만 차고서 소나무 아래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신이 달아나다 돌아보니 왜놈 6∼7명이 칼을 휘두르며 벌써 원균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원균의 생사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경상 우수사 배설과 옥포와 안골포 만호 등은 겨우 살아났으나 우리 배들이 불타는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무수한 왜적이 한산도를 향해 내려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