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직장인, 불성실한 알바생 중간 어딘가에서
20대 후반의 사회인에게 주말이란 무엇인가
5일간의 바쁜 회사 생활을 뒤로 하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거나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하는 휴식이거나
혹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임의 연속일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10월,
다시 말하자면 사회인의 주말을 가장 바쁘게 만드는 '경조사'가 참 연속해서도 있는 달이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잡혀있던 10월, 11월의 경조사 일정들에
고작해야 일주일 중 2회, 한 달에 많아야 12번인 주말 알바에 속속들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전에 미리 말씀을 드렸던 일정들이고,
그걸 감안해서 뽑아주셨겠지라는 핑계같은 위안 뿐일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도 밝혔지만 시간을 쓰는데 있어
그것이 취미든, 투잡이든 그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시간을 차지하는 활동을 시작한다면 딱 그 시간만큼의 휴식을 나에게서 빼앗는 것이고,
휴식하기를 선택했다면 그 시간만큼의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하루는 24시간이며, 인간은 잠을 자야만 한단 말인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건 많은데 나는 여전히 잠이 많아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그러면서도 활동 하나를 포기하지 못해 쩔쩔매는 미숙한 사람이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채 안되는 시점의 어느 날엔가.
직장인, 사회인으로서의 자아와 주말 알바생으로서의 자아, 그리고 나의 자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고 있던 어느 날 퇴근하려는 나를 사장님(의 따님 *모녀가 함께 운영)께서는 한쪽으로 조용히 불렀다.
"지금 00씨, 거의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출근일을 보면 거의 절반 정도에요"
아뿔싸, 한 달에 한 두 번 야금야금 빼먹은 알바 일정이 이렇게 모아보니 초라하다.
나로서는 절반보다는 조금 더 나왔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성실해야 할 알바생으로서 안하느니만 못 한 말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계속 많이 빠지면, 우리는 고용을 한 입장으로서 곤란해요. 앞으로 잘 나올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계속 다닐지 말해주세요"
선택의 순간이 나에게 왔다.
이대로 카페 알바생 (짧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하고 머쓱하게, 아쉽게 퇴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당연히 들을 말을 들었다. 하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매달릴 것인가.
나의 선택은 당연하게도 "매달린다"였다.
뭐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린 건 아니고, 내가 아르바이트생으로서 고용자가 파트타임잡을 고르는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라는 생각으로 앞으로 결근을 최소화하겠다,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는 구두 약속을 했다는 뜻이다.
고용인으로서 당연한 요구였다.
그들의 시간을 보장받고 안정적인 매장 운영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한 건데, 그 사람이 한 달에 두 번 혹은 그 이상으로도 빠진다면 어느 누가 돈을 주고 쓸 것인가.
그리고 나는 (당연히) 변명을 하지 않았고, 내 생각이 짧았음을 고백했다.
다만 일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할 수 밖에 없었는데, 바로 한 달에 한 번씩은 빠지는 것을 감안해달라는 것이었다.
한 달 내내 결근 없이 완벽히 출근할 수 있다는 다짐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의라고 생각했고, 거기에서 절대 빠지면 안된다는 답을 받았다면 아마도 죄송하다고 하고 그만뒀을 것이다.
고용주(실질적 권한 행사자인 따님)와의 대화에서 명확히 말한 것은 내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주말 출근 일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다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말 불가피한 상황일 때 혹은 개인의 일정으로 인해 빠질 수도 있음은 양해 부탁드린다. 혹시 이것이 너무 무리한 부탁이라면 그만두겠다라고 말씀을 드린 것이었다.
너무도 당당하고도 맹랑한 요구사항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여러 가지 일정이 있을 때 적어도 한 번 정도의 방어권을 행사해야만,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원래도 빠지는 것을 커버하지 못할 상황의 매장이 아니었고, 직장인으로서의 일정을 이해해 주셨던 분들이라 한 달에 한 번 최대 빠지는 것을 허용한다는 극적인 타협(?)을 이뤄냈다.
약속을 지켰는지는 우선 내가 1년이 넘게 이 곳에서 일을 지속하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자랑해보겠다.
물론 정말 불가피할 때는 결근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일찍 퇴근을 말씀드린다거나 한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오히려 8월 극성수기이자 한창 바쁠 때는 너무 힘들어 보인다면서(컨디션 최저 시기) 더 쉬어도 된다. 괜찮으니 마음 편하게 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다고 정말 마음편하게 그럼 쭉 쉴게요 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