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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18. 2019

#_진실은 모순 위에 있다

사실만 보고 믿으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상대적이다. 적어도 우리 눈에는 그렇다. 좌가 있으면 우가 있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다. 그런데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위가 곧 아래고, 좌가 곧 우다. 두꺼운 것이 곧 얇은 것이다. 높은 것이 곧 낮은 것이고 깊은 것이 얕은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서려 했다. 나는 그런 시도를 지지한다. 진실은 모순된 것들의 양면을 다 볼 수 있을 때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뒷면이 비치치 않는 두꺼운 종이 한 장이 있다. 한쪽에는 빨간색이 칠해져 있고, 한쪽에는 파란색이 칠해져 있다. 양쪽으로 사람을 세워놓고 가운데에서 그 종이를 보여준다. 이 종이는 무슨 색이냐고 물어보면 빨간면을 본 사람은 빨간색이라고, 파란면을 본 사람은 파란색이라고 답할 것이다. 무엇이 팩트인가? 누가 틀린 것인가? 둘 다 팩트고, 틀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실’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진실의 ‘일면(一面)’이다. 진실은 무엇인가? 

진실은 앞 뒤 색깔이 다른 종이를 양쪽 사람이 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진실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공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람마다 입장에 따라 보는 면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더 큰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다. 왜 종이의 색깔을 다르게 칠했을까? 원래 종이의 색깔이 달랐던 걸까? 왜 한쪽 방향이 아니라, 양쪽에서 다른 색깔을 보게 했을까? 그렇다면 당연히 사실은 왜곡되고, 진실에 대한 공방이 치열해 질 텐데, 만약 그런 분열을 의도했다면 그 분열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은 정치적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대체로 진실의 끝에는 누군가의 의도가 있다. 그것이 작은 것 일수도 있고, 큰 것일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의도 자체가 아니라, 그 의도로 인해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다. 나는 아직 무엇이 거대한 진실인지 볼 수 있을만한 안목이 없지만, 적어도 쉽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히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 역시 분명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을 거다. 누구나 프레임에 갇혀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나면 “국가”라는 것도 “종교”라는 것도 하나의 프레임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말로 내가 외계인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미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지만, 내가 어떤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어떤 생각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어리석은 대중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대중은 자신에게 불리한 잘못된 프레임이 마치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인 모순을 극복하면서 성장해 왔다. 모순을 극복하는 투쟁의 과정이 인류사의 발전 과정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그 역사 속에서 거대한 진실을 마주보며 우리가 나아가야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고, 누군가는 그 역사를 은폐한 채 지금 자기 삶의 작은 쾌락을 위해 타인을 조정하기도 한다. 


나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불어 잘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 먼저 각자가 서로의 다른 삶에서 보이는 모순적인 사실들을 극복하고 더 나은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건 거대담론이 아니라, 당장 아내나 친구, 혹은 직장동료와 풀어야 할 과제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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