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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01. 2020

#_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전형적인 ‘인싸’였다.


거의 매년 반장이나 부반장 등의 직책을 맡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교어린이회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 일어났다. 예상치 못한 아이가 회장이 되면서 선생님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는 비교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13살의 아이가 감당하긴 어려운 일이었고,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 때 제법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나는 회색인간이 되었다. 자발적 아싸(outsider)라고 할까?


늘 교탁에서 2번째 줄 가운데쯤 앉던 나는 이제 맨 뒷줄에 앉는 아이가 되었고, 그렇게 질풍노도의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시절엔 그렇게 몇몇 친한 친구들과만 특별한 우정을 쌓을 뿐 제법 조용히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 중2가 되던 해,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학교생활과는 다른 이성친구들, 형과 누나들, 대학생 선생님들까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간관계를 맺게 되면서 참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상대에게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나는 초라해져만 갔다. 나는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이었는데, 정작 사람들은 훨씬 껄렁거리고 상대방에서 자기하고 싶은 말을 하는 친구들을 더 좋아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맞추는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너무 피곤했다. 상대에 맞추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그냥 미워해도 어쩔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이전까지의 나는 아무런 색깔도 없는 회색인간이었다. 누구랑 있어도 색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돋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나는 내 색깔대로 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꾼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맞추려고 할 땐 별 관심이 없던 친구들이 내가 내 색깔을 강하게 뿜어내기 시작하자 알아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색깔은 선명한 블루였다.


그때의 경험이 인생에서 첫번째 사람에 대한 인사이트였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10대 시절 자기 색깔이 분명한 친구는 의외로 많지 않았던거다. 다들 자기 색을 모르니 당연히 자기색이 뚜렷한 친구들이 더 관심의 대상일수밖에 없는거다. 그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된다.


인기있는 사람들은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다. 자기 자신을 더 존중할수록 타인도 그런 나를 더 존중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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