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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10. 2020

#_설레는 사람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설레는 만남"이 존재하는지가 삶의 수준이다.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다가도 대화를 하다보면 빠져드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빈틈하나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만나보면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알게 되는 사실은 ‘그 사람은 언제나 내 생각보다 크다’라는 단순한 진리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만큼 불편하거나 피곤한 사람도 있지만.


20대 후반, 사람 보는 눈이 귀신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번은 친한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남친이 생겼다는 거다. 그리고 그와 있었던 이야기를 두어 개 말해주었다. 진단이 바로 나온다. 그 친구한테 말했다.

“딱 보니까 겉으로는 강한 척하고 남자다운 스타일인데, 속으로는 외로움도 많이 타고 의외로 여자한테 의지할 스타일인데?” 


그 친구가 나한테 돗자리 깔라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땐 정말 AI같았던 시절이었다.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 정작 나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진 이유조차 알지 못했으면서 그렇게 겉멋만 잔뜩 들었던 시절이었다.


30대로 넘어와서야 깨달았다. 함부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흔히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건 당연한 거고. 더 무서운 건 나의 얄팍한 관계데이터에서 얻은 몇몇 확신을 바탕으로 사람을 유형화하는 거다. 나름 일리가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충분히 그렇게 해석가능하기 때문에 더 무서운 거다. 불충분한 근거와 어설픈 확신에서 비롯된 오해만큼 비극적인 것도 없다.


다만 비극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상적인 관계 역시 ‘불충분한 근거와 어설픈 확신에서 비롯된 오해’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금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어쩌면 가족들까지도 끊임없는 오해가 반복되어 확신으로 굳어진 감정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랑은 오해를 기반으로 한 감정의 상승작용이었음을 알았다고 사랑은 무의미한 것인가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오해가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아내도, 우리 꼬맹이들도, 친구도, 사회에서 만난 좋은 분들 역시 크고 작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은 분명 어떤 오해에서 시작되었겠지만 그 오해가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만날 때 미소 짓고 설레는 존재가 있어서 삶은 살아볼만한 것이니까. 결국 삶의 질(質)이란 내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설레는 만남이 존재하느냐로 규정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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