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아니라, 감각으로,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이름을 우연히도 자주 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만남이 그렇듯 우연인듯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만남이 있는 법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해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사이책방까지 걸어오는 길 내내 읽어야만 했다. 그의 문장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사랑스런 연인을 바라보듯, 혹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으로 웃음지었다. 그는 시 자체였고, 때론 신이였으며, 자연이었다가 다시 페소아로 돌아왔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문장들 속에서 가장 그다운 문체가 꽃피었다.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장자처럼 언어의 바다를 멋지게 헤엄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의 시는 마치 자연스런 호흡처럼 흘러가다 따뜻한 입김처럼 귓속말로 속삭인다. 가장 놀랐던 일부 내용을 소개해 볼까 한다.
2
나의 시선은 해바라기처럼 맑다.
내겐 그런 습관이 있지, 거리를 거닐며
오른쪽을 봤다가 왼쪽을 봤다가,
때로는 뒤를 돌아보는......
그리고 매순간 내가 보는 것은
전에 본 적 없는 것,
나는 이것을 아주 잘 알아볼 줄 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진짜로 태어났음을 자각한다면 느낄 법한
그 경이를 나는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의 영원한 새로움으로
매 순간 태어남을 나는 느낀다.....
나는 마치 금잔화를 믿듯 세상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걸 보니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지 않는 것이니......
세상은 생각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생각한다는 건 눈이 병든 것)
우리가 보라고 있고, 동의하라고 있는 것.
내겐 철학이 없다, 감각만 있을 뿐......
내가 자연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건, 그게 뭔지 알아서가 아니라,
그걸 사랑해서, 그래서 사랑하는 것,
왜냐하면 사랑을 하는 이는 절대 자기가 뭘 사랑하는지 모르고
왜 사랑하는지,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순진함이요,
모든 순진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
『양떼를 지키는 사람』 알베르투 카에이루(Alberto Caeiro)
이 시는 “알베르투 카에이루”라는 이명(異名)으로 쓴 시다. 그는 70개가 넘는 다양한 이름으로 시를 썼는데 그 중 하나다. 어쨌거나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반해 버렸다. 그는 세상을 보는 “페소아 렌즈”를 가지고 있었다.
사물을, 사람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
어쩌면 그런 존재는 신 한명 뿐이지 않을까?
그런데 페소아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철학이 아니라, 감각으로, 사랑으로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운율 따위 난 아무래도 좋다. 나란히 선
나무 두 그루가 똑같기란 드문 일.
꽃들이 색을 지니듯 나는 생각하고 쓰지만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덜 완벽하다
왜냐하면 온전히 외형만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단순성이 내게는 없기에.
나는 본다 그리고 감동한다,
물이 경사진 땅으로 흐르듯 감동하고,
내 시는 바람이 일듯 자연스럽다......"
그의 표현처럼 그의 언어는 바람처럼 스쳐가고, 싱그러운 생명의 향기를 남긴다. 모든 사물을 모든 순간을 감동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의 능력이 참으로 부럽다. 나 자신조차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미련한 나를 돌아본다. 매순간이 감동임을. 그 감동이 생명 그 자체임을. 감동도 환희도 잃어버린 나에게 혹은 현대인들에게 페소아의 시는 산소호흡기다. 상상이 되는가? 서울 한복판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 서서 시집이라는 산소호흡기를 낀 채 서있는 모습이.
우리 삶에 시가 얼마나 경쾌한 공기인지, 산뜻한 호흡인지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