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수습하기 힘든 감정을 마주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를 잠시 내려놓고, 겸손을 배우는 과정이다.
작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나와 세상이 닿아있던 그 어떤 지점을 잠시 잘랐다가
그 사람의 문장으로 다시 꿰매는 일이다.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는 내 자존심만 읽은 것이다.
책을 통해 오늘도 잠시 나를 내려놓고
어느 작가의 삶을 집어들어본다.
마치 좀전까지 머물다 나간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그의 방에 들어선 기분이다.
그의 삶에서 나는 내 기억을, 내 고집을, 내 쓸쓸함을 발견하고
이내 책을 내려놓는다.
10여년 전 어느 찻집에서 마신 뜨거운 아쌈티가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수많은 기억에 닿아있는 감정의 실타레를 떨러뜨린 나는
저 멀리 굴러가는 기억의 조각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