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도, 좋은 책도 다시 만날 때 더 즐겁다.
좋은 사람들은 다시 만나고 싶다. 마찬가지로 좋은 책 역시 다시 만나고 싶다.
한번 만났다고 그 사람에 대해 다 알았다고 할 수 없듯이, 책이야 말로 한번 읽었다고 그 책의 내용을 다 안다고 말할 순 없다. 나는 정말 좋은 책과의 만남을 설레며 고대하는데, 사실 더 많은 책을 읽는 이유는 그런 많은 만남을 통해 다시 만나고 싶은 좋은 책을 발견하고 싶어서다.
이윽고 수많은 책을 거쳐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그땐 그 책과 깊이 연애하듯 독서를 즐긴다.
독서강의를 할 때도 가장 중요한 독서방법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 없이 "재독"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다시 읽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데, 나의 그런 독서지론에 힘을 실어줄 우군을 한 명 알게 되었다.
바로 아시아권 3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시대의 지성으로 존경받는 오에 겐자부로 작가다.**
그는 재독에 대해 치열한 읽기 훈련이라고 표현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책을 읽는 데 유용하다고 느꼈던 점들 중 하나는, '재독(再讀, reread), 즉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전신운동이 된다'라는 메시지입니다.
그의 표현처럼 재독은 전신운동이다. 이 말을 내 식대로 표현한 것이 바로 연애라고 하겠다.
즉, 처음 만났을 때(초독)는 서로 가볍게 알아가는 단계라면, 재독은 더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시 읽을 때는 처음 읽었을 때 보이지 않던 행간의 의미들이 보이면서 더욱 독서의 맛이 배가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책을 재독 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앞서도 설명했지만, 나랑 잘 맞는 좋은 책을 만났을 때 재독한다는 단서를 달지 않았던가!
책 한 권을 처음 읽을 때, 우리는 언어의 라비린스(labyrinth), 즉 미로를 헤매듯 독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한 번 더 읽을 때는 방향성을 지닌 탐구가 됩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서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로 전환되지요. 그것이 rereading, 한 번 더 읽는 까닭입니다.
그는 우리가 재독을 하게 될 때 '방향성'을 지닌 탐구가 된다고 말한다. 결국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맞닿아있는 독서가 된다는 뜻이다. 처음 독서할 때는 가볍게 읽더라도,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이 가볍게 한번 보고 말 책인지, 아니면 최소한 몇 번은 더 읽어야 하는 책인지 말이다.
또 재독의 가장 중요한 효과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나의 성장을 점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좋았던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면 시시한 경우도 많다. 그건 그 책을 잘못 읽은 게 아니라, 처음 읽고 좋았던 때보다 지금 충분히 성장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땐 그 책에 나와있는 이야기들은 다 새롭고 신선한 내용이었다면,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돼버린 거다. 고전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걸 보여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논어를 한번 읽었다고 공자가 말한 인간관계의 지혜를 다 내 것으로 만들리 만무하기 때문에 다시 읽을 때마다 성장한 만큼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고전이 아닌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나 실용서의 경우라면 시간이 지나 재독 했을 때 시시하지 않다면 내가 그동안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독서의 수준을 가늠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두고두고 읽는 책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종류의 책을 읽었는지와는 무관하게 진정한 독서의 맛을 아는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 올해 3월 3일에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뒤늦게 국내에 알려졌는데요. 삼가 고인의 삶을 추모합니다.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오늘 문장은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