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대원 May 10. 2023

#_담쟁이는 죽지 않았다

단지 숨죽여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담쟁이


죽은 줄 알았으리라

바짝 말라 간신히

차가운 벽을

견디며 서있었기에


다시는 웃지 못할

시든 잎만 움켜쥐고

있었기에


그렇게 잊혀지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기에


하나 이 긴 겨울이 끝나고

봄바람에 작은 햇살이

드리울 때


다시 보게 되리라

떨리듯 작은 가지를 뻗어

작디작은 잎을 

다시 틔워


언제나 그렇듯

다시 봄과 함께

피어나리라


어느 5월 

그 메말랐던 모든 벽을

푸르디푸른 잎들로

온통 채우리라




참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은 온통 춥고, 삭막했고, 되는 일이 없었던 시기였다.

일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공황장애 비슷한 경험도 했다. 세상 어디에도 나하나 편히 쉴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무실 앞 골목으로 나왔더니 맞은편 건물에 말라죽어버린 듯한 담쟁이덩굴이 보였다. 열심히 살았으나 가엽게 말라버린 그 모습이 꼭 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남겨두고 싶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내년 봄에 너의 부활을 보여달라고.

그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 시 한 편을 적어 두었다.


가장 힘들었던 12월의 어느 날 바라본 담쟁이


이듬해 6월 우연히 다시 보게 된 담쟁이덩굴은 보란 듯이 푸른 잎을 피우며 건물을 가득 감싸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와 한참을 담쟁이덩굴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담쟁이는 그저 겨울을 인내하고 봄에 새 잎을 틔웠을 뿐인데, 그게 참 고마웠다. 살아줘서, 다시 피어나줘서. 


그 순간 다짐했다. 

죽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라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 역시 최선을 다하겠다고. 

지난 겨울을 지나 올해 더욱 더 풍성한 잎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있을 담쟁이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이듬해 6월 다시 만난 담쟁이 덩굴


전에는 듣지 못하던 귀와 보지 못하던 눈이 이제는 들리고 보인다.
세월을 살던 내가 순간을 살고 배운 말만 알던 내가 이제는 진리를 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 숲에서 위와 같은 시를 썼다. 우리는 겪어보지 않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삶이 주는 수많은 선물을 통해 성장한다. 때론 아프고, 때론 상처나고, 때론 외로움에 치를 떠는 순간조차 지나고 나면 참 고마운 선물이었음을 느낀다. 신은 언제나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_당신의 삶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