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매 순간 기적인 이유
저는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닌 크리스천이지만, 불교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슬람이나 인도(힌두교) 쪽의 시와 산문도 즐겨 읽는 편입니다. 그런 저에게 간혹 '교회 다니시는 분이 그러셔도 되나요?'라고 묻는 분이 계신데요. 저는 그분께 그렇게 다시 반문하곤 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만나면 싸우실까요?"라고요.
당연히 그 두 분이 만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참된 진리로 이끌기 위해 의기투합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의기투합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다르겠지만요.
중요한 건 서로 다른 교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역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데, 모든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하나의 종교만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이 스스로 신앙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이런 생각 역시 제 개인적인 사견일 뿐입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을 때 만나게 된 <반야심경>과의 특별한 만남 때문입니다. 여러 불교도서들을 읽었지만, 최근 들어 가장 쉽고 재미있으며 깊이까지 갖춘 보기 드문 책이었습니다. 그중에 특별했던 한 문장을 소개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인 것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인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성경과는 또 다른 맥락으로 같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짜릿한 구절이었습니다.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이 일치하는 상태를 정말 멋지고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기 쉬운 법이지요. 정작 자기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가치 없음을 감추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는 설명이 덧붙입니다. 이 세상에 이토록 경쟁과 다툼, 시기가 많은 이유는 다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가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타인의 사랑을 받아야 나의 가치가 입증된다고 느낀다면 아직 스스로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 못한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무언가를 이루거나 달성해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인생은 그 달성의 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이 고통의 시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만약 내가 '이미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가치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과정과 결과 모두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만 산다고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허상일 뿐 진짜 행복이나 자유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야심경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서 심오한 내용을 이해하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은 요즘 여러 책을 읽으면서 '진리'라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해서, 너무 멀리 있어서, 찾지 못해서 깨닫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저 너무 단순하고 가까이 있는 거라 믿지 못해서, 실천하지 못해서, 받아들이지 못해서 삶으로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타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국가의 거대한 정책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환한 미소가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반대로 내가 무심코 내뱉은 짜증한마디가 어떤 이의 일상의 행복을 방해하는 복병일 수도 있고요.
세상엔 당연한 것들이 하나도 없는데, 내게 주어지는 감사한 것들을 당연하게 치부해 버리고 소중함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당연함의 기준이 높을수록 행복은 멀어집니다. 당연함의 기준을 과감히 낮춘다면 행복은 매 순간 펼쳐지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흔히 인생을 고(苦)라고 말합니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으로 Dukkha라고 하는데, 차축과 차륜 사이의 틈에 탈이 생겨 잘 돌아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괴로움과는 조금 뉘앙스가 다릅니다. 다시 말해 무언가 잘 안되고 있는 상태, 불만족한 상태, 어긋나 있는 상태, 조화롭지 않은 상태, 안정이 안된 상태 등을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균형이 깨져있는 상태, 불완전한 상태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인생은 괴로움이다 혹은 고통이다'라고 단정 짓기보다 "삶은 원래 불완전하고, 균형이 깨져있는 불만족스러운 상태다"라고 이해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당연함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인생은 오늘 아침에 사고가 나서 내가 크게 다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말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일정이 꼬여서 여러 번 불필요해 보이는 일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건강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누군가와 웃으며 대화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기적적이고 아름다운 일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상황을 더 많이 겪어본 사람들은 남들 기준에 당연한 일상에서도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반대로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게 되는 화려한 순간들이나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맞춰 버린다면, 대부분의 일상은 비루하게만 느껴지겠지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당연한 게 없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262자에 담긴 반야심경의 지혜를 이 짧은 독서로 이 짧은 글로 다 담을 순 없겠지만, 내 삶을 바라보는 작은 관점의 변화로 당신이 느끼는 행복의 크기가 부디 더 커지길 바라 봅니다.
저 역시 내 삶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보다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풍요함과 충만함을 감사하며 더 좋은 파동과 에너지를 전해주는 존재가 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 되어 줄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