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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마음이 머문 자리

추억의 단편들

by 변대원

마음이 머문 자리


10.

차이콥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처음 듣고

그 웅장함과 소리를 통해 처음 보게 된 낯선 풍경에

황홀하다 말했던 어느 주말

어머니와 함께 한 거실의 풍경이 있다.


16.

남몰래 좋아했던 교회누나에게

말로 고백할 자신이 없어

작은 손편지에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문장들을 빼곡히 적었던

수줍은 편지지가 있다.


21.

첫사랑과 첫키스를 나누던

봄햇살이 반투명한 창문을 어지럽게

통과해 몽롱하게 내리쬐던

그녀의 하숙방 창가에 있다.


34.

갓 돌이 지난 딸아이가 커다란 모자를 쓰고

한 낮의 태양보다 더 밝게 웃으며

한 손에 꼭 쥐고 있던 베이비 로션이 있다.


46.

어느새 흰머리가 늘어나

마치 몇 가닥만 브릿지를 한 것같은 머리결을 쓸어올리며

귀찮은 듯 배를 통통 두드리면서

문질러 달라며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장난스런 눈동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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