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우연히 알게 된 책친구가 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다르고, 심지어 사는 지역도 다릅니다. 1년에 서너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사이입니다. 그녀는 지방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님이고, 저는 서울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강사일을 하고 있으니 접점이 있을 리 없습니다. 1년에 연락하는 일도 3-4번 정도 그것도 생일축하 안부를 묻는 정도지만, 항상 반갑고 친한 느낌의 책친구입니다.
첫 만남은 유현준 교수님의 북살롱(소규모 강의)이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책에 싸인 받는 시간에 둘 다 일부러 맨 끝에 줄을 서서 교수님께 각자 작은 선물을 드리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마지막에 인사를 하고 귀가하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책이야기를 아주 잠깐 나누었는데, 그만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앗, 이 사람도 진짜 책에 진심인 사람이구나.'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도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날은 남편분이 데리러 오실 때까지 1시간가량 강의장 1층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책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책친구가 되어 특별한 지성인들이 모이는 문화모임에 함께 참석하기도 하고, 이후에는 남편분도 함께 오셔서 더욱 좋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두 분이 사는 지역으로 가서 함께 식사도 하고 늦은 시간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달 초에 약사님의 생일이어서 제가 책을 한 권 선물로 드렸는데, 또 마침 그 책이 지금 배우고 있는 공부와 딱 연결되는 책이라 신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몇 달 만에 반갑게 안부를 묻다가 며칠 후에 남편분 학회 가는 길에 함께 서울로 나오는 일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약속을 잡았습니다.
오후 2시 만나기로 한 북카페에서 2년 만에 만났지만, 마치 2주 전에 만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커피를 주문해서 3시간 넘게 이런저런 일상과 책이야기 등을 나누었습니다.
근처 백화점 구경하다가 구입하셨다며 취향 200% 저격하는 노트와 펜홀더, 형광펜까지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김없이 작은 카드에는 따뜻한 안부와 더불어 멋진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기록하는 모든 이들의 손은 아름답지요. - 책벗 OO 드림
그렇습니다. 기록하는 모든 이들의 손은 아름답습니다. 동어반복이지만, 마음에 깊이 와닿는 문장이라 거듭 말할 수밖에 없네요.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고,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지만, 그 만남이 왜 기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건 사람을 환대하는 그분의 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카드에 적혀있는 표현처럼 고마운 '책벗'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읽었던 쓰쓰이 도모미 작가의 <멋지다>라는 책의 한 구절이 기억납니다.
사람을 대하는 그분의 태도는 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을 만나면 각자 자신이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향한 애정과 존중, 삶을 향한 통찰, 때론 아프고, 때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내의 시간을 거쳐온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파동을 느낍니다.
'참 멋진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삶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아낄 줄 알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