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48장 : 위학일익 위도일손
도덕경 48장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爲學日益, 爲道日損(위학일익, 위도일손)
이 문장을 책에서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배움을 행하면 날마다 보태지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덜어진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소나무)
학문을 배우면 날로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날로 줄어들거니와
- 도덕경, 박일봉/육문사
근래 읽으며 제법 깊이 생각하게 되었던 문장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선 더할 익(益)자와 덜 손(損)자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순서로 바꾸면 "손익(損益)"입니다. 보통은 손해와 이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도덕경은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하면 안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둘 다 주역의 64괘에 포함된 단어지요.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배움이란 매일 더하는 것이고, 도란 매일 덜어내는 것이다.
제가 느낀 대로 더 풀어보면 이런 식입니다.
배움은 새로운 것을 더하여 재료를 모으는 것이고, 도란 재료를 덜어내어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도덕경은 공자의 유교사상(學을 강조)과 대치되는 도가사상(道를 강조)으로 배웠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논어와 도덕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상은 두 단어는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연속되는 과정이나 순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성장이라는 큰 순환의 측면에서 자신을 꽃피우기 위해 영양분을 모으는 과정인 셈입니다. 모인 영양분을 통해 줄기가 자라나고, 잎이 자라나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반면에 도는 창조의 완성이자, 새로운 순환을 위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그전에 꽃은 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 열매의 씨앗은 다시 땅에 떨어져서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주역이라는 책이 그런 원리를 잘 설명하는 책이지요.) 혹여, 잘못 해석하면 학문은 수준 낮은 것이고, 도는 수준 높은 것이라고만 해석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도덕경 해석이 그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대지성에서 나온 도덕경의 48장 해석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학문을 하는 자는 갈수록 욕심과 꾸밈이 늘어난다. 도를 구하는 자는 갈수록 욕심과 꾸밈이 줄어든다. (도덕경, 소준섭/현대지성클래식)
아예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 과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학문과 도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게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바둑을 처음 배울 때는 정석부터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정석을 버려야 하죠. 그럼 정석은 어차피 버리는 것이니까 처음부터 필요 없는 것인가요? 아니지요. 시기에 따라 그 필요가 다를 뿐인 거라고 이해해야 맞을 겁니다. 학문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은 중요합니다. 비움은 충분한 배움이 전제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달이 차면 기울듯이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과 봄으로 순환하듯이, 배움도 순환해야 합니다. 배움으로 채웠다면, 비움으로 실천하며 그 배움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공자도 70세를 일컬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 말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배우고 익히며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성장했다면, 나누고 베풀며 비워야 합니다. 배우기만 해서도 안되고, 비우기만 해서도 안됩니다. 순환하듯 새로운 것을 채우고, 이전 것은 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새롭게 배우고 익혔는지 돌아봅니다.
더불어 나는 오늘 무엇을 비우고 나누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삶(생명)은 순환합니다.
*관련 글 : https://brunch.co.kr/@listans/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