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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25. 2023

#_설령 다 전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어젯밤 독서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참 많이 했던 강의지만, 할 때마다 제 스스로도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참여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독서를 강의한다고 해서 독서를 완벽하게 하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제 방식대로 지식의 바다에서 빠지지 않고 수영하는 방법을 조금 먼저 발견했을 뿐입니다.

강의를 하는 것도, 책을 쓰는 것도 오히려 너무 멀리 나간 생각은 그게 아무리 훌륭한 깨달음이라고 해도 소통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느낍니다. 자신이 태권도 국가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라고 해도 태권도장을 오픈해서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기마자세와 정권 지르기 같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어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그게 참 어렵습니다.


댄 히스, 칩 히스 형제의 명작 <스틱>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현상인 '지식의 저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실험을 소개합니다. 두 명 중에 한 명은 노래를 들으면서 그 노래의 박자에 맞춰서 책상을 두드리면, 한 사람은 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노래를 맞추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손가락으로 박자를 두드린 사람은 상대방의 50%의 확률로 그 노래를 맞출 거라고 응답했는데, 실제로는 2.5%만 노래 제목을 맞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무언가(지식)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대충 설명하거나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그것을 '당연히' 이해할 거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지식의 저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97.5%가 몰랐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일단 정보(노래 제목)를 알게 되면 두드리는 사람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테이블을 두드릴 때, 그들은 맞은편에 앉은 듣는 사람이 음악이 아닌 단순하고 단절된 몇 개의 타격음밖에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다.


저 역시 많은 시간을 '지식의 저주'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강의를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그 간격을 얼마나 큰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제법 많이 느낍니다.

좋은 작가가 된다는 것,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훨씬 치열하게 내 삶과 앎의 경계에서 새로운 시도와 반복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걸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실제 삶에서 써먹을 수 있는 의미 있는 형태로 바꿔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며칠간 강의를 하면서 이전 강의 때는 없었던 방법들, 새로운 이야기들을 조금씩 더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몇 달 사이 조금 더 성장한 만큼 그것을 강의에 녹여내는 일은 귀찮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충분히 쉽게 녹아들지 못한 '제 입장에서 좋은 지식'들도 많이 섞여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틱의 이 내용을 한번 더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내 내면으로 들어가 이런 마음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너무 쉽게 설명하면 내가 아는 지식들도 너무 쉽게 폄하되는 건 아닐까?'라는 우려 말이죠. 이해가 되면서도 참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이라면 그런 시선에 완전히 자유롭긴 어렵겠지만, 제 속의 알량함을 그렇게 속절없이 마주하고 맙니다. 독자나 청중의 입장에서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마음보다 나 자신이 더 돋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던 거겠지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상대를 위한 마음으로 하려면 먼저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태도가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할지라도 조금 더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각자가 느낀 것을 남기면 짧게라도 그 마음이 공허해지지 않도록 공손히 받아주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그렇다면 설령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다 전해지지는 않더라도 내가 전하려는 의도는 확실히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 선배 강사님은 제 수업을 듣고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 지금 참 보기 좋아. 앞으로 더 유명해지고, 잘 나가더라도 이 마음 변치 말아요."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에서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또한 자만일 테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태도가 습관이 되고, 더 다듬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인생은 최선을 다했다고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최선이 당연해지고, 최선을 넘어 한 끗 다른 무언가가 하나씩 더해질 때 나만의 꽃을 피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3일간 했던 강의 중에 가장 잘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가장 더 많은 것을 반성하게 되는군요.

감사하게도 다음 달 다다음달 연이어 좋은 자리에 강연을 초대받아서 조금씩 더 바빠질 것 같은데요. 바빠질수록 제 자신을 돌아보고, 참여하신 분들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흔들리지 않아야겠습니다.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칩 히스 댄 히스의 <스틱>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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