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끝나고 늦은 장마가 오며 더위가 한풀 꺾이는 줄 알았는데, 여름이 가고, 다시 여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흐르는 땀과 뜨거운 햇볕에 불쾌지수는 높아지지만, 이런 날씨의 변덕이 마치 인생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아마 어느 추운 겨울날 두 손을 코트주머니에 한껏 찔러넣고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오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부터 그렇지만,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생각인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여러 번 반복되면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여기게 되지만, 사실 당연한 건 없잖아요.
누군가의 배려와 관심도 반복되면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요.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하고 불편한 것들도 반복되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일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나에게 필요한 좋은 것들을 '당연한' 나의 일상으로 만들어서 실천할 수도 있고요.
우리나라는 워낙에 사계절이 뚜렷하고 절기에 따른 변화가 확실히 느껴지는 좋은 기후 속에서 살고 있다 보니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면 선명한 가을이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저의 어리석은 '당연함'을 반성해 봅니다. 당연한 가을을 없을 테죠. 충분한 여름이 지나고 나면 그저 자연스레 가을이 찾아올 뿐입니다.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들일수록 자칫 꾸준히 노력하는대도 성과가 나지 않아서 무력감을 느끼시는 경우를 봅니다. 운동 조금 한다고 해서 바로 몸짱이 되지 않듯이, 책 좀 읽고, 글 좀 썼다고 해서 천재가 되는 건 아닐 겁니다. 성장은 불편하고 어려운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더군요. 매일 편하게 익숙한 것들을 반복한다고 해서 '당연히' 성장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 역시 몇 년 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름 제 삶에 주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극복하기도 하고, 도전하고, 시도하고, 깨어지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오늘을 맞이했는데요. 그래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드리자면 딱히 보여드릴 게 없더군요. 제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니 '내 수준'에서의 노력이었을 뿐 내 인생의 열매를 맺고 결실을 맺을 가을을 맞이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느냐면 그렇진 않아요. 우리가 당연히 여겨야 하는 유일한 것은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당연한 가을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기만의 뜨거운 여름을 충분히 보내지 않았다면, 꽉 찬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가을을 만나긴 어려울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9월 초에도 여전히 여름 같은 이 날씨가 마치 나에게 주는 신의 상냥한 메시지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오후입니다. 어떤 이는 빨리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릴 테지만, 어떤 이는 여름이 지나고 다시 여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카뮈가 알제에서 겨울을 참고 지낸 것처럼 말이죠.
알제에 살고 있었을 때 나는 항상 겨울을 잘 참고 지냈다. 어느 날 밤에, 2월의 싸늘하고 순결한 하룻밤에, 레 코쉴 계곡의 편도나무들이 하얀 꽃들로 뒤덮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연약한 눈(雪) 빛의 꽃이 모든 비와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황홀함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그 꽃은 열매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불과 몇 주만 지나도 완연한 가을이 와있을 테지요. 우리에겐 아직 보내야 할 여름이 남아있음을 만끽하시길. 마치 월요일이 휴일인 일요일 밤처럼 말이죠.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알베르 카뮈의 <여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표지 이미지 :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
* 인용문에 나온 편도나무가 아몬드나무입니다. 종교적으로 부활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