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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Jul 08. 2019

#_관계를 묻다

안전한 관계란, 온전히(全) 편안한(安) 사이가 아닐까?

좋은 관계란 뭘까? 늘 고민하게 된다. 문득 가장 좋은 관계는 나의 여러가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은 관계가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누군가를 이해할 때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그의 한가지 모습으로 그 사람을 기억한다.

문제는 그 사람의 모습이 한가지일리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 참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그런 한결같은 한가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조금씩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여전히 나를 완전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세상은 흠있는 사람에게 너그럽지 않기에 우리는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persona)로 무장할 수밖에 없다. 마치 옷을 입을 때 TPO(time, place, occasion / 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갖춰 입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도 나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는 관계, 그럴 거라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우리는 ‘안전한 관계’라고 느낀다. 安全이라는 단어에서 의미하듯, 온전히(全) 편안한(安) 관계인 셈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에서 여러 가지 내면의 옷을 갈아입는 번거로움이 없어도 되는 편안함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의 단점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 사람의 한 가지 특징으로 이해되는 관계다. 그것이 이해되는 이유는 그 단점에 실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애써 고치려고 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간단하다. 그냥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좋으면 좋다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다. 그 간단한 걸 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 생각하다 지친 사람들마다 안전한 관계를 원한다. 

누구에게나 안전한 절대적인 존재는 신외에는 없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적인 안전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상대성이 다양성을 만들고, 그런 다양성이 인류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니까. 

안전한 사람을 찾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안전하지 못한 상태임을 체크해야 한다. 내가 안전한 사람이 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안전한 관계가 만들어 지는 것이지, 안전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안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의 사고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인해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의지하여 나의 관계를 규정짓는 접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말해줘야 한다.


나는 안전한 사람인가? 

타인의 단점을 보고 판단하고 규정짓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단점 뒤에 있을 그의 삶과 상처가 무엇인지 헤아리고, 염려하는 사람인가?

스스로 나는 관계에 안전한 사람인지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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