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충만하게 하는 5시간 일상 여행
7월 말에 강남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그곳에서 강남에서 책방과 북카페, 출판사등을 운영하시는 대표님들과 문화재단 담당자분들이 함께 강남구의 독서문화발전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나눈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오늘은 거기서 만나 뵈었던 "송커피 × 터무니 책방"의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찾아갔습니다. 두 번째 만난 자리임에도 너무 반갑게 맞아주셔서 더욱 반가웠던 만남이었는데요.
카페가 밖에서 보면 다소 평범해 보였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제가 좋아하는 취향저격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책들의 향연이었습니다.(사진을 올리면서 보니 제가 책관련된 사진만 찍고, 카페 관련 사진을 하나도 안 찍었더라고요. 이렇게 습관이 무섭습니다. ㅎㅎ)
아래 사진은 1층의 외관과 내부에 책장 사진들입니다.
1층은 일부 책이 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카페형태였고요. 지하로 내려가면 제대로 책방으로 꾸며놓으신 "터무니 책방" 공간이 나타납니다.
로고 하며, 멘트 하며, 하나하나 제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해 주는 듯하네요. 제가 작은 서점을 운영한다면 딱 이렇게 하고 싶다는 그 느낌으로 책방을 꾸며 놓으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책이나 큐레이션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말이죠. 책을 전달하는 방식의 측면에서는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배울 게 많았던 공간이었고요.
아래 사진처럼 곳곳에 책방과 책의 큐레이션을 설명해 주는 아기자기한 포스터와 안내장들이 인상적입니다. 삽화도 참 귀엽지요?
저는 1층에서 대표님과 인사하고 잠시 손님이 없는 틈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점점 손님들이 오셔서 바빠지셨기에 지하로 내려와서 다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래쪽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노트와 필사를 했는데요.(제 책상에 있는 스탠드와 똑같은 스탠드라 뭔가 제 자리다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앉은자리 뒤로는 오래된 오디오와 LP판, 기타 등으로 포인트를 준 작은 카페 공간이 있었고요.
그 옆쪽으로는 책으로 예쁘게 진열된 책방 공간이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소품(굿즈)들도 판매하시더라고요. 저는 한참 책을 읽고, 이곳저곳 궁금한 책들을 살펴보다가 특별한 책 한 권이 저를 사로잡아서 하나 집어왔습니다. ㅎㅎ (어떤 책일까요? 후후)
9시 30분에 도착해서 책구경, 책방구경과 더불어 읽고 있는 책과 노트까지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세 12시가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와야 할 듯합니다. ㅎㅎ
아래는 지하 터무니 책방의 영상입니다. ^^
다시 사이책방으로 오는 길을 검색해 보니 양재천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교육개발원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에 여유롭게 초가을의 아름다운 날씨를 만끽하며 산책을 해 봅니다.
오전에는 향긋한 커피와 함께 분위기 좋은 책방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졌다면, 오후에 다시 사이책방으로 돌아오는 길은 자연과 햇살이 만들어 낸 일상의 풍요로움을 만끽합니다. 이 순간을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 자꾸 걸음이 느려집니다. 더 자주 주변을 둘러봅니다. 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 봅니다.
버스를 타고 대학로에 내려도 기분 좋은 하늘은 변함없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1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책방으로 가는 길에 잠시 "모티집"이라는 식당에 들러 간단히 막국수로 점심식사를 합니다. 춘천이 아닌 서울에서 근래에 먹은 막국수 중에는 가장 맛있었던 것 같아요. (막상 사진을 올리고 보니 그리 맛있게 보이진 않네요. ㅎㅎ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을 이럴 때 쓰나 봅니다.)
식사를 마치고 요즘 제가 꽂힌 빵집 '솔트 24'로 향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특별한 디저트를 사 먹곤 하는데요. 지난주엔 화요일에 손님이 오셔서 사드리기도 했고요. 오늘은 혼자 가서 최애빵 하나를 구입해 봅니다. 사진에 보시다시피 빵 2개면 밥값보다 비싸지만, 다행히 제가 좋아하는 빵은 이 가게에서 가장 싼(?) '시오빵(3,300원)'입니다. ㅎㅎ 중간중간 한입씩 뜯어먹으며 책방으로 향합니다. 겉바속촉(겉은 바싹, 속은 촉촉)의 정석입니다. 일반적인 소금빵과는 조금 달리 겉은 바게트 같고, 안은 부드러운 식빵 같은 식감입니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할 때 같이 나와서 집에 나와 책방까지 출근하는데 5시간이 걸렸네요.
그 사이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뭔가 시간의 밀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순간순간이 참 벅차고, 풍요롭게 느껴지는 하루입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막국수 한 그릇, 디저트로 빵하나까지 대단한 음식들은 아니지만, 제 일상을 빛나게 만들어주기에는 더없이 완벽한 구성인 것 같습니다.
뭐든 가장 좋은 것들로 채우면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나고, 내게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내 입맛에 맞는 대수롭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도 얼마든지 남부럽지 않은 행복이 되어주니까 말이죠.
근사하지 않아도, 우아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바로 그 취향이 오늘, 가장 나다운 하루를 살게 했으니까.
<하루의 취향>을 쓴 김민철 작가가 마치 오늘 저의 하루를 들여다본 듯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해줍니다. 나에게 취향이란 '나를 조금 더 나답게 성장시키는 모든 것들을 향한 애정'이 아닐까 정의해 봅니다. 매일 이렇게 시간을 낼 수는 없지만, 매일 작지만 의미 있는 시간들은 분명히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