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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20. 2023

#_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매 순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에 대하여

저는 일부분야의 책과 영화를 제외하면 나머지 예술에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좋아합니다. 음악이 좋고, 아름다운 그림이 좋고, 새로운 영감을 주는 영화와 책이 좋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건 다시 보고 듣습니다. 그게 나에게 주는 특별함은 한 번으로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왜 좋은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꼭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 아닐까요? 오히려 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 대부분 훨씬 더 정확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이유 없이 좋은 것들이 항상 더 오래가더라고요. 사람도 물건도 공간도.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잖아요.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일 겁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완벽을 동경하지만, 정작 완벽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자신과 닮았기 때문 아닐까요. 사람이 가장 사랑받는 때는 갓난아기일 때인데, 그때가 인간으로서는 가장 불완전한 시기인 것처럼 말이죠.


윤광준 작가는 <심미안 수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현재를 산다. 바로 지금의 눈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익숙한 판단이란 과거에 근거한 경우가 많다. 예술은 이런 과거의 판단으로부터 계속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매 순간 '현재'만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똑같아 보이는 하루, 비슷해 보이는 익숙한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작가는 익숙한 과거의 판단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익숙함에 안주하면 타성에 젖게 됩니다. 타성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느끼고 있다면, 그건 이미 타성에 젖어 있다입니다. 정작 타성에 젖은 사람들만 스스로를 보지 못하지요. 예술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그런 타성을 뒤흔들어 일깨우는 것입니다.


오전에 강의가 있어서 오후가 되어서야 사이책방으로 돌아왔는데요. 제가 이곳에 오면 가장 처음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것입니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잔잔한 경음악이나 재즈음악을 선곡하는 편입니다. 단지 공간에 음악만 하나 추가되었을 뿐인데, 적막했던 공간은 금세 포근한 느낌으로 바뀝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런 것조차 예술이 주는 일상의 일깨움 아닐까요?


매일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합니다. 매일 책을 30분 더 읽는다고 갑자기 엄청난 지식이 늘어나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 읽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그 시간을 통과한 이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더 달라지기 때문에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똑같다고 생각하기 쉬운 이 하루, 평범한 오후가 사실은 태어나서 딱 한순간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시간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타성에 젖었을 때는 똑같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질 때, 그게 바로 예술 아닐까요?


작가는 글만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예술가입니다. 다시 말해 글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책방 명함에 "책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입니다"라는 문장을 넣어 두었는데요. 책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작품이라고 여기고 대하게 되면 훨씬 더 풍요로운 독서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입니다


생배추를 먹어도 맛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생배추를 절이고, 김치를 담아서, 보쌈고기와 함께 먹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가요? 금방 군침 돌지 않나요? 새로 담은 김치 한 포기를 손으로 죽죽 찢어서 그중 하나를 잘 삶아진 야들야들한 돼지고기수육에 돌돌 말아 한 입 먹으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겠죠. 똑같은 것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의미와 감정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음식도 하나의 예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예술은 우리가 매 순간 새롭게 살아가고 거듭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은 어제의 이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입니다. 30분 전의 일상과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일상의 단조로움을 흔들어 깨웠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 세상 그 어떤 것도 새롭게 다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눈은 시력과도 무관한 마음의 눈입니다. 나의 삶과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바라보는 사랑스런 눈입니다.


그런 아름답고 사랑스런 눈을 가진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그대의 눈동자의 건배 :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브리 보가트가 잉그리트 버그만을 바라보면서 한 대사입니다. "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말을 너무나 멋지게 번역했죠. 그 이후 굉장히 유명한 말이 되었고, 2017년에 출간된 히가시고 게이고의 동명의 소설도 있습니다. (근데 왜 저는 영화 위대한 게츠비에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더 강렬하게 떠오르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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