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상주의자 예찬

무언가 지나친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다.

by 변대원

나는 이상주의자다.

어릴 때부터 줄곧 ‘너는 지나치게 이상적이야’ ‘너는 지나치게 감성적이야’ ‘너는 지나치게 낙천적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자 나의 ‘지나침’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동안 사람을 만나고, 책을 만나고, 나를 만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 인생은 답이 정해진 시험지가 아니라,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도화지라는 사실이었다.


인생이란 그저 “자기답게”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은 쉬우나 그게 너무 어렵다. 도대체 자기다움이란 게 뭐란 말인가!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가진 지나친 성향들이 가장 나다운 것이 아닐까?’


지나치게 책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음악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고, 지나치게 생각하고, 지나치게 관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까지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다보니 남들과 달리 지나치게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그 무언가가 바로 가장 나다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뭘까?

그건 내 생각과 행동이 타인의 상식선에 머물러 있는 뜻이고 그건 평범하다는 의미와도 같다. 다른 말로 하면 남들과 다를 바 없다는 뜻 아닌가! 결국 자기다움은 내 안에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어떤 성향, 특징, 열정 등에서 비롯된다고 해야 옳다.


스티브 잡스는 지나치게 심플함과 완벽함을 추구했다. 끝까지 그것을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것이 “잡스다움”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애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손정의는 지나치게 대담하고 큰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 역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것을 끝내 이루어냈다. 그것이 “손정의다움”이고 그게 소프트뱅크의 정체성이다.

김연아는 과감히 트리플 악셀을 버렸다. 그녀가 그 점프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가장 자기다운 연기, 가장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점프와 표현력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연아다움”이었고, 그녀는 세계 최고의 피겨퀸이 되었고, 피겨스케이팅의 역사가 되었다.

누군가는 세심하고 꼼꼼함으로, 누군가는 남다른 창의성으로 그렇게 가장 자기다운 것을 통해 자기만의 세상의 문을 열었다.


분명 그들도 처음에는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그 지나친 것을 가장 자기다운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순한 양으로만 살아갈 것인가?


나는 가끔 이상주의자들을 만난다.

과감히 현실을 뛰쳐나온 사람, 여전히 현실 속에 있지만 마음속의 꿈만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 끊임없이 꿈을 쫓아다니며 자신의 원하는 삶을 찾는 사람, 조용히 신의 뜻을 기다리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나씩 해내는 사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상주의자라고 다 똑같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지나침”을 가지고 있고, 그 “지나침”에 대해 무수히 지적받으며 그것이 자신의 단점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도 그런 상처받은 이상주의자일는지 모르겠다.


혹 당신이 여전히 이상주의자라면 적어도 나는 당신편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지나침을 지적하겠지만 나는 지지할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이 가진 그 지나침이 가장 당신다운 것임을 믿는다. 단지 당신의 ‘지나친 그 무엇’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가치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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