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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Dec 27. 2023

#_1년 먼저 받은 선물

이런 발상 신선하군요.

오늘 책방으로 출근하는 길에 갑자기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반갑지만 미안한 목소리로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그 친구 와이프 생일이 제 생일 3일 전이거든요. 크리스마스 연휴에 가족들 챙기고 하느라 정신없었다고 한참을 미안해하는 친구가 참 고마웠습니다. 사실 이렇게라도 연락해 주는 게 이미 고마운 일이라 정말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런 덤덤함이 오히려 친구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서 말 입니다만, 제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브(24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1월부터 11월까지는 가장 기억하기 좋은 날짜지만, 정작 12월이 되면 가장 기억하기 어려운 날이 됩니다. 각자 저마다의 크리스마스일정에 가려서 제 생일은 쉽게 잊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막 다른 사람 생일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당연히 제 생일도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친한 친구들도 생일을 까먹고 지나가기 일쑤고, 꼭 생일선물이라고 주는 것보다는 아무 날도 아닐 때 주는 선물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친구의 연락 덕분에 생일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쩌면 생일이란, 그 사람의 존재가치를 아무런 이유나 조건 없이 인정하고 환영해 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나 혼자가 되었든 아니면 더 많은 사람이 되었든,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데는 분명 그만의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 사람이 잘 살든 못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저 그 날짜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축하해 줄 수 있는 날이 생일이니까요.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생일을 챙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존재 자체로 축하해 주고, 환대해 주는 일은 분명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잠시 후에 친구에게서 선물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건 지나간 23년도 생일축하 아님.
다가오는 2024년도 너 생일 축하.
미리 축하함. 나 1빠야. ㅋㅋ"


짧게 요약한 듯 적어 넣은 메시지에 혼자 빵 터졌습니다. 

올해 제 생일 축하 1등은 저희 딸이었는데요. 전날 밤에 12시가 넘자마자 아빠 생일을 축하해 주는 예쁜 딸이었는데요. 내년도 생일은 딸이 1등을 못하게 되었네요. 이 친구 이거 무려 1년 앞서서 선수를 치다니요..ㅎㅎ


친구 덕분에 재미있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친구처럼 1년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자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투자자인 피터 틸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인생을 걸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목표가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10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면, 

왜 6개월 안에 그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내년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바로 시작할 수는 없을까?

자본이 많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본이 적은 상태로는 시작할 수 없을까?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서 그 사람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고 1년 먼저 시작할 수 없을까?


이런 생각들을 갈무리하며 버스에서 내려 책방으로 걸어옵니다.

일상에서 새로운 영감을 준 친구를 조만간 만나 맛있는 밥을 사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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