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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12. 2019

#_‘덕분입니다’라는 말이 참 어렵다

나라는 인간의 얄팍함에 대하여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빈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가장 습관적으로 하는 말은 ‘감사합니다’ 정도. 적어도 그 말은 어떠한 경우에도 빈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감사의 기준은 철저히 나 자신에게 있으니까.

칭찬을 할 때도 없는 말을 지어내는 데는 소질이 없다. 안 예쁜 사람한테 예쁘다는 말을 잘 못한다. 다른 사람이 볼 땐 어떨지 몰라도 내 눈에 예뻐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이나 몸매 같은 거 말고 태도와 마음 씀씀이가 예쁜 사람. 그런 사람들은 뭘 해도 예뻐 보인다. 예쁘다는 표현이 여성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도 예뻐보인다. 그래서 참 예쁘다고, 멋지다고,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태도가 예쁜 사람은 충분히 그런 말 들을 자격이 있으니까. 어쨌거나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못하는 말에 대한 이야기다.


“덕분입니다.”라는 말이다. 

'이게 다 잘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다 잘 따라와 주신 덕분입니다.' 애당초 내가 그리 겸손한 성격도 아니거니와 내가 힘들게 성취한 결과를 다른 사람 덕분이라고 말한다는 건 왠지 곤란하다. 사실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이룬 성취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겉으로 예의상 말은 하면서도 속마음은 아니다. 

온전히 내가 다 갖고 싶다. 다 내가 잘해서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그래야 좀 더 내가 더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니까. 막상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또 다르다. 내가 도와준 건 조금 밖에 없으면서도 그가 나에게 다 내 덕분이라고 말해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나라는 인간의 얄팍함이 이 정도다.


이렇게 나 잘난 마음으로 어른이 되었다. 몸은 어른이 되었것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같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더 정확히 보인다.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한다. 해야 하는 일이 100개라면 처음엔 100개를 시간이 지나도 80개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일이 많아진다 해도 70%는 여전히 부모 몫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가 처음부터 100을 해주던 것이니 본인이 20개만 해도 스스로 엄청 대단한 줄 안다. 그래서 아이인거다. 설령 부모가 뭔가 못 챙기는 일이 하나가 생기면 아이는 그게 다 엄마 때문이다, 아빠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남은 79개는 부모 덕분인 걸 모른다.


 한 사람의 성숙함은 생각의 크기가 아니라, 감사함의 깊이와 비례한다.



'저 철부지 녀석들이 뭘 알겠어?'라며 아내한테 말하다 혼자 문득 깨닫는다.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내가 못 본 수많은 ‘덕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가 잘못한 건 거의 다 나 ‘때문’이지만, 내가 잘된 건 대부분 누군가의 ‘덕분’이라는 걸.

지금도 여전히 “덕분입니다”라는 말이 어려운 이유는 내 안의 내면아이의 심술 때문이었다. 난 아직도 내가 잘한 것 같고, 내가 공을 다 독차지하고 싶지만, 사실은 다 덕분이라는 걸 겨우 인정한다. 가까스로 조금은 어른이 되어 간다. 한 사람의 성숙함은 생각의 크기가 아니라, 감사함의 깊이와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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