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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09. 2019

#_좋은 사람이 되기엔 너무 피곤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기준이 필요하다

입 밖으로 말하진 않지만, 마음 속 깊숙이 새겨진 생각이 하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선량하기 짝이 없는 마음 하나가 내 삶을 구속한다. 말할 수 있는 생각보다 표현하기 힘든 생각의 힘이 더 세다. 말할 수 있는 생각은 나보다 작은 생각이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생각은 나보다 큰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대체로 그런 생각에 갇혀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생각을 종종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구속하던 생각에서 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나쁜게 아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 그 생각은 이런 식으로 쉽게 왜곡되어 왔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내 기준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알 수 없는 타인의 기준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걸 모르고 참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다.


가끔 아이들을 혼낼 때가 있다. 늘 좋은 아빠이고 싶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만약 내가 아이들의 기준에서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면 그들의 수많은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달라는 건 다 사주고,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만약 그렇게 한다고 나는 좋은 아빠일까? 아니다.

당장은 나쁜 아빠처럼 보이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남매끼리 배려하지 않고 싸우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화를 낸다. 내 기준에서는 그게 좋은 아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말한다고 모든 면에서 내 기준이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대하는 원칙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직장 상사나 지인을 만날 때는 어떨까? 아이들을 대하듯이 똑같이 될까? 아니다. 이건 또 다른 문제다. 타인을 대할 때 내 안에 있는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무의식적인 기준이 발동한다. 부탁을 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내 의견을 이야기하기가 미안하다. 이런 모든 마음 밑바닥에는 ‘내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나한테 실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깔려있다. 그렇게 내 행동에 불필요한 제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도 별로 없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은 제법 훌륭한 태도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기준은 스스로 정해놓지 않으면, 막연한 타인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만” 애쓰게 된다. 이런 삶은 피곤하다. 주어진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타인의 거절도 완곡하게 거절할 수 있는 태도가 내 기준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라면, 타인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거절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학교에서 어떻게 시험을 잘 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공부했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자신만의 사소한 기준들을 하나씩 잡아가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길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좋은 사람의 기준은 내가 정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게만 보이려고 애쓰진 않을 것이다. 그런 기준 하나가 삶을 보다 나답게 만들어 주는 원칙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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