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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Feb 23. 2024

#_말과 글로는 닿을 수 없는 것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나온 문장입니다.

저마다 조금씩은 그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이 글이 '기능으로써의 사랑'과 '존재로써의 사랑'을 표현하는 문장이라고 느꼈습니다. 

상대의 '있음'으로 나를 채우려는 마음이 욕망인데, 그것은 그 '있음'이라는 기능이 상실되면 쓸모없어지는 관계입니다. 기능으로써의 사랑이죠. 반면에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없음'이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나의 '없음'이 그 자체로 수용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존재 그 자체로 서로가 조우하고 아껴주는 관계인 셈입니다. 전자의 사랑은 사회생활이나 연인 관계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고, 후자의 사랑은 비록 한 방향이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사랑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여기서 '있음'은 장점, 능력, 기능 등으로 해석했고, '없음'은 단점, 무능, 쓸모없음 등으로 해석했습니다. 저의 주관적 해석일 뿐이며, 각자 자기 안에 있는 언어와 심상으로 단어를 매칭하는 과정을 경험하면 되는 거라고 느낍니다.


오늘 문장을 인용한 것은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글을 읽으면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왜 이렇게 어렵게 썼나라고 말할 수 있고요.

어떤 사람은 반대로 이렇게 멋진 표현으로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충분히 설명하긴 어렵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옳은 말입니다.

일반적인 의식 차원에서는 쉽게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은 소통방법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세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관계를 좀 더 내밀하게 풀어서 생각해 나가다 보면 말과 글로는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는 저 글처럼 기존에 없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말과 글로는 닿을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과정이 글쓰기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내 인생을 글로 풀어서 설명해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를테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그런 글이겠죠? 자 그걸로 나라는 사람의 인생이 충분히 설명되나요? 당연히 안될 겁니다. 내 인생은 그런 A4용지 1-2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그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되는 겁니다. 단순히 길이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만약 내 인생을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내 인생은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파도 같았다. 

 

내 인생이 태풍도 아니고, 바다나 파도도 아니겠지만, 내 인생의 파란만장함과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 않나요? 이처럼 말과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그래도 조금 더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글쓰기인 셈입니다.


다시 서두에 인용한 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 글을 왜 쉽게 쓰지 못했냐고 말하는 분에게 '사랑'이라는 것인 조금은 디테일하게 정의되지 않는 덩어리 상태의 개념일 것입니다. 반면에 저런 표현으로도 사랑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에게 '사랑'은 훨씬 더 정교하면서도 광활한 단어일 것입니다.


결국 생각의 차원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위상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신형철 작가의 글에서 처럼 사랑에 대해 여러 경험을 하고, 깊이 사색해 본 사람만 볼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마음 어딘가로는 느끼고 있지만,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심상이랄까요.

그게 언어화되었을 때 마치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지듯, 막연했던 감정의 모양이 선명하게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건 제법 짜릿한 경험입니다. 독서의 기쁨이기도 하고요.


이처럼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지만,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발달시켜 왔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것이죠. 

그게 삶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통해 존재함을 느끼고, 체험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건, '삶을 산다'는 것과 참 닮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이미 적어 놓은 글을 받아 적듯이 살 수도 있고, 누구도 표현하지 못한 글을 창조해 낼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고 읽으면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요. 글을 통해 내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무언가를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새롭게 글을 쓰듯이 내 인생도 나답게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삶의 많은 부분들이 유치한 단어들도 설명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압니다.

그나마 작은 부분들 하나씩 더 나은 문장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과정이죠.

독서가 무엇이냐고 묻고, 글쓰기가 무엇이냐고 묻고, 기획이 무엇인지, 공감은 무엇인지, 타인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더 디테일하고 선명한 문장을 얻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쓰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문장은 없겠지만, 훨씬 더 정확하고 선명한 문장은 분명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글을 쓰듯, 오늘 하루도 이렇게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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