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ge Graph Jul 24. 2015

안다는 것, 그리고 모른다는 것

일상문학 두 번째 

I was born not knowing and have had only a little time to change that here and there. - Richard P. Feynman



일상문학 두 번째 이야기는 '모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파인만의 말처럼 우리는 'not knowing'의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인생은 어쩌면 알아가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일단, 나라는 사람.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가족, 친구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 우리 동네 맛집, 이 과목에서 성적을 잘 받는 법, 보고서 잘 쓰는 방법, 상사 비위 맞추는 방법. 물론 파인만의 말은 세상에는 정말 배워야 할 것들이 많으며 그것들을 다 배우기에는 100년 남짓 되는 인간의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다는 말일 겁니다. 그가 이뤘던,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업적들도 그의 입장에선 여기에서 저기로 아주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일상에서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루를 알면서 보내는 것과 모르면서 보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죠. 표지의 남자는 도널드 럼즈펠드입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미국의 국방성 장관을 지낸 정치인입니다. 아니, 문학이라며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냐고요? 이분은 시인이기도 합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요. 오늘은 그의 시 한 편을 함께 읽을 생각입니다. 


의외로 문학을 하는 사람 중에서는 문학적인 감수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법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월리스 스티븐스도 보험회사의 사장이었고,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도 의사였죠. The Waste Land로 잘 알려진 시인 엘리엇(T.S.Eliot)도 은행원이었고요. 


럼즈펠드가 정치인이었다고 해서 그의 시까지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9.11 테러 사태 때 어떤 활동을 했고, 이라크전을 이끌었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몰라도 됩니다. 어쩌면 그는 자기의 시 안에서만큼은 시인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의 직업의 영향이 있는 것인지, 그의 시는 매우 건조하고 간결하면서도 재치있습니다. 




The Unknown


As we know, 
There are known knowns. 
There are things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We know there are some things 
We do no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The ones we don't know 
We don't know. 

—Feb. 12, 2002, Department of Defense news briefing





이 시에서는 3가지의 앎의 형태가 나옵니다. 


known knowns

known unknowns

unknown unknowns


우리가 아는 것을 아는 알고 있는 것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아는  모르는 것들

우리가 모르는 지도 모르는 정말 모르는 것들


하나 더 덧붙이자면, 

unknown knowns도 있을 수 있겠죠. 아는 것을 모르지만 알고 있는 것들. 











이것은 상자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그리고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서 4개의 상자를 마련해보았습니다. 


known knowns

known unknowns

unknown unknowns

unknown knowns



여기 이 4개의 상자에 일상을 하나하나 분류를 해볼까요. 물론 2개의 상자는 끝까지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한 채로 남아있을 겁니다. unknown knowns와 unknown unknowns의 상자는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known unknowns와 known knowns의 상자로 들어가게 되겠죠. 오늘 하루를 살면서 새삼 다시 깨닫게 된 나의 면모들, 혹은 새삼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 순간들을 적어봅니다. 비어 있는 두 개의 상자도 분명 우리가 볼 때는 비어 있지만, 그 안에 많은 것들로 차있을 겁니다. 


출처 : zoommy : dont erase


다시 말하지만, 럼즈펠드가 2002년 국방부 뉴스 브리핑에서 왜 저 시를 이야기했는지는 모릅니다.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저 시가 위치한 맥락은 지금 우리가 시에서 가지고 나온 4개의 상자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럼즈펠드의 시에서 4개의 상자를 꺼내어, 나를 조각조각 내서 분류하는 순간 저 시는 온전히 나만의 시가 된 것입니다. 그게 문학을 즐기는 아주 단순하고도, 쉬운 방법입니다. 


친구 중에 보면, 비문학은 읽겠는데 문학은 못 읽겠다는 친구가 있습니다. 자기계발서 같은 비문학 책들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진짜' 이야기지만, 문학은 '가짜' 아니냐고요. 문학이 가짜라는 데는 굳이 반박하지 않겠지만, 문학은 가짜를 진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읽는 사람과 만나면 진짜가 됩니다. 




There is no Frigate like a Book 

To take us Lands away

Nor any Coursers like a Page 

Of prancing Poetry 

- Emily Dickinson, Selected Poems



 일상문학 숙제 


1. 4가지 상자를 만들어봅시다. 종이 4개면 충분합니다. 각 상자마다 이름을 붙이세요.

2. 나의 일상을 분류해서 적어봅시다. 


*럼즈펠드의 더 많은 시를 보고 싶으신 분은 Slate지의 기사를 참고하세요. 

(http://www.slate.com/articles/news_and_politics/low_concept/2003/04/the_poetry_of_dh_rumsfeld.html)


매거진의 이전글 문학, 일상을 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