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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정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의 지난함에 대하여

by 가이아

(10년이 다 된, 슬프고 힘든 이야기입니다.)


귀국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집을 세놓고 나니 가장 큰 일이 차를 파는 것이었다. 한인회 사이트와 Craigslist에 차 스펙과 상태, 희망가를 올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어서 금방 연락이 왔다. 한국분이었다. 바로 통화를 하고 구두로 계약을 했다. 차를 보고 이상이 없으면 바로 넘기는 조건이었다.


한 주가 지나고 약속한 날이 왔다. 점심을 먹고 만나기로 한 터라 오전에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잠깐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시 무응답. 그렇게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속는 셈 치고 약속했던 장소에 나갔다. 멀지 않은 곳이어서 잠깐 바람쐰다 생각하고 갔다.


결국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화가 났다. 가장 먼저 온 전화에 구두 계약을 걸어 두었던 터라 이후에 온 제안은 모두 고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공고를 올리고 '영업'을 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차는 어렵지 않게 팔았다.


그리고 며칠 후.


지인과 밥을 먹다가 차 팔려다가 바람맞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대뜸 "혹시 이름이 OOO 아니었나요?"라고 물었다. 놀라서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리고 들은 이야기는 참으로 황망했다.


얼마 전 OOO씨에께 큰 일이 있었다 했다. 결혼한 지 몇 해 되지 않은 부부는 어린 아이와 함께 2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것. 그런데 아이가 2층 창가에서 놀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다 했다. 아이는 숨졌고, 부모는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잠시지만 화를 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 이후로 '바람맞을' 때마다 생각한다.


'다 사정이 있겠지.'


학생들이 백지 답안지를 낼 때,

과제를 내지 않을 때,

무단으로 결석을 할 때도 그렇다.


너무 아픈 사정이 아니기를 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화내지 않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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