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언어가 나의 혼잣말을 지배하지 않도록

by 가이아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과 같은 언어와 톤을 사용해 우리 자신에게 말을 건다면 치유는 정말 힘들어집니다.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 어떤 말을 하는지, 또 어떻게 말하는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종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에게 이야기를 건네지요."


개인 심리상담의 맥락에서 나올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트윗을 읽자 마자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비판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말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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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지금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대다수는 상대방과 다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편가르기의 언어입니다. 증오와 악마화의 언어를 동원하여 상대방을 완전한 타자로 규정하고 자기편은 그와는 전혀 다른 존재, 즉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의롭고 지혜로우며 우월한 사람들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분명한 오류를 범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유해한 생각을 퍼뜨리는 상황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치는 때로 부드러운 타협의 과정이 아니라 격렬한 갈등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비판의 과정에서 자신과 '추종자'들을 흠결없이 우월하며 온전히 올바른 사람들로 정의한다면 그 자체로 좋은 정치의 가능성을 잘라내는 꼴이 됩니다. 자기성찰 없는 정치는 결코 견고한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류정치는 '대결국면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가정 위에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해당 트윗을 또 다른 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생산성과 자기계발의 논리로 점철된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자신에게 적용하는 경우입니다. 저 또한 이런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난 몇 해 저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게을러서'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종종 발견됩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긍정적인 톤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분노하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 그런 삶을 요구하고 때때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불안하고 험난한 시대에 너의 대안이 뭐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나이브한 이야기를 통해서 바뀌는 게 무엇인가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런 반론의 가능성을 인지함에도 우리의 언어는 계속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를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혐오의 언어를 자신에게 사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분열의 언어를 분열의 언어로 되받아치지 않을 수 있도록, 경쟁의 언어로 나 자신을 재단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의 말이 오염의 언어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화려한 언어 속에서 우월한 자신을 확인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엇보다 그들의 언어가 나의 혼잣말을 지배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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