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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Nov 07. 2022

안부

독거노인, 아버지

〈독거노인(獨居老人)은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가는 노인을 말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독거노인’을 검색하면 나오는 문장이다. 매체에서 독거노인의 일상을 관찰하는 영상이 보일 때면 늘 가슴 아픈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대개 부모가 자식을 두고 아픈 손가락이라 하는데, 내겐 아버지가 아픈 손가락이다. 그리고 내 휴대전화엔 ‘아버지’ 대신 ‘행복한 독거노인’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여보세요.”

  “독거노인, 요즘 뭐 하고 지내셔?”

  “독거노인은 무슨. 그냥저냥 지내지 뭐. 내 손주 새끼들은 잘 있지? 보고 싶고마.”     

 

 부모님은 내가 22세가 되던 해에 이혼하셨다. 너희들 크면 미련 없이 갈라선다던 엄마의 말은 그냥 하는 푸념이 아니었고, 정확히 두 살 터울 동생이 성년이 되던 해 법적 남남이 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혼자셨다. 한 번은 TV 옆 작은 액자 속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중년의 부인과 찍은 사진이 나를 어쭙잖게 위로하고 있었지만 얼마 후 치워졌다. 나의 시선을 의식하신 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새로운 연애를 늘 축하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건 혼자 계신 아버지를 매번 챙겨드리지 못하는 못난 내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걸 새삼 느낄 때마다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리곤 했다.     


  “목소리가 왜 그러셔? 어디 편찮으셔?”

  “아니, 디스크 있잖냐. 나이 먹으니까 아파. 여기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고마”

  “그러니까 젊으셨을 때 엄마 말씀 좀 듣고 하셨으면 지금 편하잖아. 나이 드셔 뭔 고생이셔.”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 아직 현역 중이시다. 그만두시라고, 용돈 드리겠다고, 연금 나오지 않으시냐고 누구를 위로하는지 모를 얘기들을 가끔 하지만 아버지는 늘 ‘혼자 있으면 뭐 해.’라는 말로 자식들을 위로하신다. 그래도 가끔 드리는 용돈은 마다하지 않으시고 아주 기분 좋게 받으신다. 덩달아 나도 기분 좋아진다. 그래서 가끔 나를 위해서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기도 한다.     

  

  “아, 야. 뭔 돈을 이렇게 보냈냐.”

  “아빠 수술하셨다며, 왜 말씀을 안 하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다냐. 너무 걱정하지 말어. 잘 지내고 있응게”

  “월세 사시면서 무슨 돈으로 수술비를 감당해. 수술비 보내드린 거야. 아빠 쇼핑 용돈 아니니까 병원비에 보태셔.”     


 난 살가운 딸은 아니다. 맏딸이기도 하고-꼭 맏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격도 나긋나긋하지 못하다. 그래서 부드러운 위로, 따뜻한 안부는 없다. 잔소리와 쓴소리가 늘 안부를 대신한다. 오히려 그런 안부가 아버지를 덜 외롭게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수화기 건너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딸의 잔소리를 반가워하는 미소가 전달된다.


 그 연세되시도록 집도 없이 아직도 하루 벌어 하루 잡숫는 아버지이지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다. 10년 전 결혼식 날짜를 잡고 청첩장을 찍던 날, 청첩장에 적힌 아버지 이름 앞에 故를 새겨 넣는 일만 없었다면 난 더없이 좋은 딸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내가 결혼하기 전에 이혼하셨냐고, 결혼이 무슨 대수인 양 소리소리 지르며 울고불고 난리를 친 못난 딸이다. 부모님의 이혼이 예비 시댁에 너무 부끄러워 아버지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어쩔 수 없었노라고. 그래도 아버지이니 아버지 노릇은 해달라고 기어코 혼주석에 앉혀놓고 큰아버지라 인사시킨 못 된 딸. 그런 인사를 받으며 당신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그땐 알지 못했다. 전화할 때마다 이름 대신 ‘딸’이라고 살갑게 불러주는 아버지. 신혼여행 다녀온 직후 집에 도착한 예식 사진을 보며, 남아 있는 청첩장을 보며 가슴 깊이 죄송하다며 오열했던 난, 참으로 못되고 이기적인 딸이다.      


  “자고 있었냐? 미안허다, 우리 딸”

  “또 술 마셨어? 아휴, 전화 끊어.”

  “알았다. 끊으마.”     


 약주를 하시면 늘 신세 한탄을 하시는 아버지. 꼭 전화를 빌려 속을 드러내신다. 맨 정신에는 표현 못 하시는 깊은 속내임을 알면서도 난 그 앞에 따뜻하게 대꾸하지 못한다. 그 속을 아버지를 닮았는지 결혼 2년쯤 후, 집 정리를 하면서 신발장 맨 꼭대기에 버려지지 못하고 자리 잡고 있던 청첩장을 다시 한번 보고선, 그날 잘 먹지도 못하는 양주를 깡으로 마시고 주정을 해댔다.     


  “전병식이!! 그래도 당신이 내 아버지라고!! 세상 건강하게 살고 계신 아버진데 왜 당신 이름 앞에 故를 새겨 넣는 인생을 사셨냐고!! 전병식!! 으허허헝.. 미안해요, 아빠.. 죄송해요.”     


 남편 앞에서 목놓아 울었던, 그날의 진심은 다음 날 아침 낯 뜨거운 기억이 되었지만 그건 내 마음 깊이 자리한 죄책감이었다. 상견례에도 아버지는 없었고, 아이의 돌잔치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아버지는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그땐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청첩장의 기억은 내겐 지우고 싶은 치부이며 천하의 몹쓸 불효였다.


 매미가 서로 짝을 찾겠다고 울어대고 모기떼가 식량을 찾겠다고 설쳐대던 끈적끈적한 여름날, 도시 끝자락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을 찾아갔다. 아버지가 새로 이사를 하셨다 해서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 들고 집 구경을 간 것이다. 솔직히 말이 이사지,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 겨우 얻은 셋방이었다. 나의 잔소리를 예상하셨는지, 아버지는 먼저 선수 쳐 이사의 핑계를 나열하셨다.     


  “요즘엔 서울에 일이 없어 지방에 일이 생기면 지방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하는디, 차가 없잖냐. 차 사느라고 월세를 좀 밀렸더니 이놈들이 바로 나가라네.”

  “세상천지에 7만 원짜리 월세 아파트가 어딨어. 그나마 나랏 집이니까 싼 건데. 월세 몇 푼이나 한다고. 나한테 얘기하시지.”

  “아파트 답답혀.”     


 답답한 마음에 속상한 얘기를 했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초라하고 외롭고 고독했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려 화장실이라도 청소하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세탁기를 열어보았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구멍 숭숭 뚫린 낡은 런닝 한 장, 밑단이 다 닳아빠진 사각팬티와 유명 스포츠 브랜드 셔츠 한 장. 외롭지 않은 멋쟁이로 보이고 싶으셨는지 아버지의 마음을 알겠다가도 참 속상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눈치채셨는지 말없이 집 밖을 나가셨다. 그리고 난 조용히 세탁기 문을 닫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세탁기 안의 그것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그때 내 심정은 지금 떠올려봐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마치, 그 속옷이 아버지라서 그것마저 버리면 청첩장의 아버지 이름 앞에 다시 한번 故를 새겨 넣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쓸데없는 의미를 새겨 넣고 있었다.      


  “수박이 아따, 비싼디. 우리 딸내미 왔응게 사왔고마.”

  “혼자 사시면서 이렇게 큰 수박 누가 다 먹는다고.”

  “딸내미 이따 갈 때 반 잘라, 갖고 가.”

  “그래요. 혼자 사시면 수박 잡숫기 힘들잖아.”     


 비싼 수박 왜 또 사 오셨냐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아버지 뒤로 보이는 구두가 먼저 눈에 들어와 버린 탓에 순순히 수박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썰어 최대한 씨를 발라 반찬 통에 넣어두고는 버리지 말고 틈틈이 드시라고 한 후, 아버지를 모시고 가까운 대형마트를 갔다. 런닝 한 장, 사각팬티 때문이 아니었다. 구두 때문이었다.     


  “아, 구두는 뭐 하러. 멀쩡한디. 구두 필요없당게.”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늘 그렇듯 드리는 건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미 아버지는 가지런히 진열된 구두들을 탐색하고 계셨다. 그리고는 검은색 구두를 조심스럽게 보여주셨다.     


  “이거 어떠냐.”     


 구두는 필요 없다던 아버지, 세상 천진한 얼굴로 30년째 앓고 계신 디스크 빠진 허리를 숙여 신어 보이시고는 마냥 신나셨다. 그러다 문득 가격표를 보시고는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비싼 가격도 아니었다.      


  “아빠 딸, 그 정도 사 드릴 능력은 있어요. 가격 눈치 보시지 말고 맘에 드는 걸로 고르셔. 신발은 좋은 걸로 좀 신으셔. 발이 건강하셔야 해.”

  “헤헤. 그려. 애비는 이것이 좋은디.”     


점원이 구두값을 계산하는데 묻지도 않은 딸 자랑을 하신다.     


  “야가 내 딸인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어요. 근디 애비가 못 나서 예단, 예물도 못 해줬는디 지가 벌어 결혼식까지 혼자 다 한 애예요, 야가. 내 새끼지만서도 참 야무져.”     


 기분이 한껏 들뜨셨는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침을 튀기며 열변하고 계셨다. 참, 귀여운 모습이었다. 구두 한 켤레가 뭐가 그리 좋다고. 좀 더 좋은 구두가 아님에 죄송한 마음을 담아 결혼식 때 함께 행진하지 못한 마음까지 담아 이젠 작다 못해 앙상해진 아버지의 팔에 내 팔을 엮었다.     


  “딸내미, 고맙다. 잘 신을게. 오늘 아주 기분 최고고마.”     


 그날 아버지의 속옷은 사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존심 같아서 손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셔츠를 또다시 사시겠지만, 그것이 노년의 행복일 테니 두둑이 용돈을 챙겨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난 오늘도 안부를 묻는다.     


  “여보세요? 독거노인, 요새는 뭐 하고 지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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