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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Nov 07. 2022

피터의 죽음

4화

 인간의 존엄성은 이미 과학에 존속되었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에반 역시 다르지 않다. 에피르가농 2번가 11st에서 그는 걸음을 멈췄다. 오늘 만나기로 한 패트릭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그는 생명공학을 연구하고 있는 공학박사이다. 그의 부친은 생명을 연장하지 않은 채로 9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부친 또한 생명공학에 영향력 있는 박사로 현재 유통되고 있는 수많은 캡슐을 개발하였으며, DNA 버드파커가 가장 단시간에 미세전류의 자극으로 확장해 인간의 생명 연장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학계에서는 당연히 그가 수명을 연장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는 인간의 존엄성에 회의를 느끼고. '나는 97세의 지금이 가장 죽기 적당한 시기다'라는 병상의 인터뷰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패트릭 역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살 만큼 살다가, 혹은 쓸 만큼 쓰다가 가는 요즘 시대에 인간이 사망함으로써 느끼는 애도는 참으로 귀한 감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런 고귀한 슬픔에 잠겨 있었고 불현듯 인간의 존엄성에 무게를 둔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생명공학 박사가 갑자기 철학을 논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지금 시대엔 없다.     


 “피터에 대한 일은 대단한 유감일세. 매체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으로 피터에 대한 죽음을 해석하지만 난 자네를 이해할 수가 없구먼. 시대에 맞춰가는 일에 회의를 느낀다니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다니! 밖을 나가보게. 자네는 모르겠지만 내가 청년이었을 80년 전만 해도 길엔 노숙자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마약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았다고. 현실적으로 보면 인간의 존엄성은 2100년 초부터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은 왜 못 하나. 안타깝군. 참으로 아까운 인재인 것을.”     


 에반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피터의 죽음은 전 세계의 미스터리이자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답답함에 또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모를 거야. 주머니에 2달러를 쥐고 거리에 나앉아 본 적 있나? 80년 전엔 참으로 흔한 일이었지. 그때 나는 딱 하루만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숨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허나 지금 우리는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네. 축복받은 인간들이지. 어두운 뒷골목을 점령하고 있던 노숙자들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네. 간혹 보이는 행색이 초라한 걸인들은 스스로 건강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느라 생명을 팔 수가 없거나, 생명을 팔고 받은 대가를 체계적으로 유용하게 쓰지 못하고 흥청망청 써버린 대가를 치르는 거야. 보이는 것으로만 생각하자면 생명이란 것이 참 하찮아 보이는 불쌍한 그들이지만 속내를 보면 그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라고, 안 그런가? 이 늙은이 생각이 틀렸나?”

 “에반. 당신의 말이 맞아요.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이런 것이 아니었어요. 생명 연장의 꿈은 100년 전에도 숙제고, 지금도 숙제죠. 영원할 수 없는 게 삶이니까요. 아버지는 생명을 연장하는 연구는 하셨지만, 생명을 반납하는 말도 안 되는 연구는 하지 않으셨어요.”

 “간과하지 말게. 생명을 반납하는 조건으로 부를 얻어내는 지금의 수익구조는 바로 그들이 원하던 바였어. 처음 버드파커를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흥분했어. 그리고 전류 변형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세계는 들썩이고 세계적인 부호들은 일제히 DNA 임상 시험에 참여하겠다고 예약이 줄을 이었어. 임상 시험에 부호들이 먼저 출사표를 던진 건 아마 내가 단언컨대, 역사상 처음일 게야. 그리고 자네 부친이 마침내 부호들의 입맛을 맞춰줬지. 생명 연장이 실현된 거야. 그때 함께 들고일어난 건 검은 뒷골목의 노숙자들과 교도소의 사형수들이었지. 내 죽음을 담보로 얻을 수 있는 부를 달라고 아우성이었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자본주의 시대가 아닌가.”

 “자본주의가 이제 역겨워지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도 아마 저와 같은 마음이셨을 거예요. 돌아가시기 직전 제게 칩 하나를 주고 떠나셨어요. 이걸 전해드리려고 뵙자고 했어요.”


 작은 칩이었다. 칩엔 작은 글씨로 ‘피터’라고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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