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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단 Oct 23. 2021

고독의 총량



입김과 연기가 같은 시절이 있었지

희미하고

애절해서


당신이 거듭 착각이라 말했지만

비슷하게 보였는걸


우리는 구분하려 애썼지

다른 이유에서


서리내리던 이른 가을에

담배 연기와

호흡의 흔적에

여전히 차이를 모르겠는 나는


분명

변했는데


강산도 계절도 사람도

이토록 달라졌는데


고장의 기온은 어제보다 20도 가량 내려갔고 체감 온도는 모른다. 단풍이 지기도 전에 찾아온 이 느닷없는 한파에 대해 사람들은 지구의 기상이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말한다. 나는 내의를 입고 긴옷을 입고 그 위에 또 긴 옷을 입고 붉은 가디건을 입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의도 내복을 입고 바지 위에 바지를 덧입고 있다. 담배를 피우려 나가려면 이 위에 작은 패딩을 입고 수상쩍은 재질의 겉옷을 걸치며 두터운 바지를 껴입는다. 별이 아주 많이 보여서 소설에서 나온 신기성, 계명성, 장경성을 찾을 수 있었다. 가을에 뜬다는 물병자리도 볼 수 있었을텐데 그 별자리 모양이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희귀해서 구경하기 어렵다고 했기 때문에. 아쉬운 일이다. 달은 하현으로 기울고 있고, 시일이 지나면 자정이나 그보다 늦은 밤에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쌍안경을 가져오기 잘했다.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언젠가 자조모임의 쉬는시간에서 사람들이 버린 꽁초를 기어이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던 병자가 생각났다. 그는 담뱃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원한다면 담뱃재도 자신의 손에 털어버릴 기세여서 기억했다. 한옥 단칸은 고요하며 적절한 적막이 고여있다. 나는 모든 옷을 걸어놓았고, 각종 도구들을 한켠 한켠에 조금 단정하게 세워놓았다. ‘나’답지 않은 행위임을 알고 있다. 금침을 깔고 누워있다. 겉면의 비단은 붉다. 새빨간 것들을 연상하며 잠들 것이다.


 

한 친구가 나에게 피 색이 연상된다 한 적있다. 물감 대신 피로 쓰고 색을 칠하던 때가 있었지, 그는 몰랐을지도 혹 알았을지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도구일진데 하물며 신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얼마전에 신살을 확인한 적 있었다. 공망이 많아? 정신병자잖아! 망신살이 있어? 다 까발리고 다니는데? 월살이 있어? 캄캄한 밤길을 달빛에 의지해 걷는다라, 달과 금성에 대해 논하느라 인생 절반을 바쳤다. 달이 비추시기라도 하면 감사하지. 육해살이 있으니 척추를 조심하고, 음독자살할 것이다….(그거 쌍으로 해봤어!) 그러나 그게 고생인가? 고난인가? 하면 아니죠. 아닙니다. 확실히 합시다. 사주야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은요 생쥐의 맥은 매우 빠르고, 코끼리의 맥은 매우 느려서 쥐는 일찍 생을 마감하고 코끼리는 오래 산다고 합니다. 평생 뛰는 심박의 횟수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젊어서 불타듯이 스스로를 태워 죽은 이들의 예술을 짧은 시간에 모든 기력을 소진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나는 맥박도 불공평하게 뛰고, 심박도 아슬아슬한 이들을 압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끝을 향해 달려가더라도 서로 다른 트랙으로 달릴 것입니다. 보이는 출구로 달려나가는 건 모두의 습관 같은 거죠. 나도 달려가려 왔어요. 이곳에서 얼마나, 한계까지, 막다른 곳 까지, 아주 많이 아주 깊고 얽힌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왔어요. 그리고 사진 몇 번 찍고 깨달았죠. 아 이것은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 구나. 얼기설기 시멘트 다리가 놓인 곳을 건너며 물가에 왜가리 소리가 들렸어요. 낮에 새를 볼 수 있겠다. 



당신은 여전히 고독한 사람일까? 여전히 착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남았을까? 서원을 어기고 단교하며 누군가의 편이 되길 자처했을 때, 그때의 은원인가? 이제 더 물을 수 없는 당신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기도를 올리고 향피우길 마다하지 않았지.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아.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아. 잡다구레한 모임에서 놀음 삼아 하는 말들도 안해. 정기적 안부도 받지 않아. 더 알 이유가 없어. 그러나 내 근본은 당신이 쥐었고 나는 지금의 상황에 적절한 표현을 찾으러 그 옥편을 찾아 향한다. 물론 글자는 바랬고 책자는 낡았으며 군데군데 밑줄과 동그라미의 흔적이 가득한 것을 들추며 당신이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잠시 숨을 고르고 집중해. 나는 사랑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고독을 나눈 것 뿐인가? 말하지 않는 자를 관찰하는 법을 배웠지. 용적이 달리는 두뇌에서 낸 통계에도 그것은 동질감이라 말하던데. 당신은 고독했어. 오랫동안 그래왔고, 배신에 시달렸고, 홀로사 편했고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 되었지. 당신 고독의 총량을 나는 계산 못해. 아니 모든 이들의 총량을 어찌 알겠어. 하지만 고독은 비참한 일은 아니야, 흥미로운 일이더라. 그러니 나를 기꺼이 배신자라 말해. 더러운 상상을 늘어놓은 작자라 욕해. 그리고 평생 만나지 않길 다짐해. 그러면 당신의 총량도 조금 가벼워질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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