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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단 Dec 24. 2020

more alive with colors

정신병자의 우정

그 시절 두 명의 학생이 탑을 차지했다. 한 명은 속칭 교수가 인정한 또라이 ᷿ 블랙캣마스터, 다른 하나는 종종 이름보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어린 양이었다면 나머지 학생들은 양의 형상도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다 자란 양이라고 불렀는데 알고보니 그건 나만 부르던 별명이었다.     

그 학교의 특징은 여럿 있지만 흔히, 그러니까 후배들한테 선배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투로 이른바 “연산군이 놀던 터”였기 때문에 10대 시절을 얌전히 보내온 이들도 주사로 난동을 부리고 병에 걸리며 음란을 즐기는 곳이 된다는 것이 일 번, 미대나 예대가 없는 곳이어서 이상한 곳에서 이상하게 성장하는. 이를테면 경영대나 응통, 수학과 같은 곳에서 자라난 수상한 잎들이 견제 받지 않고 그대로 성장해 이삼 년 후 학교의 명물이 된다는 것이 이 번이었다. 그 아마추어 예술 세계를 제패한 것이 돌연변이가 드물게 나온다던 신학대의 ‘하나님의 다 자란 양’이었고, 문대로 가는 골고다 언Ḁ을 오가며 자란 사학과 출신의 ᷿ 블랙캣 마스터이었다. 둘의 공통점은 간단했다. 술을 마시면 끝까지 가는 것. 갖가지 일들을 벌이고 슬몃 사라지는 것. 자신의 병과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것.     


아마 그 둘을 엮는 최고의 공통된 바, 바로 양극성장애 1형이었다는 것이다. 진중하고 진지했던 때였다. 학내에 구지가를 인용해 총장을 비판하는 플랜카드가 붙은 것이 2008년 가을이었다. 전까지는 감히 유머로 플랜카드 지면을 낭비하는 것은 보기 힘들었다. 모든 면에 메세지가 담겨야했던 지난 시절의 분위기가 선연했고 특히 운동권들이 그런 시도를 하는 적은 없었다. 그 시작을 연 자가 블랙캣 마스터였다. 09년과 10년애 걸쳐 활동을 시작한 블랙캣 마스터를 이어 한번 터진 물꼬를 막는 이들은 없었다.플랜카드를 쓸 천을 동대문에서 받아와 고양이 모양으로 잘라 문구를 적어 달았다. 그것을 보고 기능적이고 생산적인 사람되기를 못 하는 친구들이 모여 무리를 이뤘다. 그들은 총학생회 선거도 치뤘다. 블랙캣 마스터는 그곳의 그림 담당이었다. 교내 신문에 만평을 그려달라는 주문도 왔다. 모 선생의 책에 삽화를 넣었고, 친구들이 주워오는 사회적기업들의 그림을 채웠다. 조금만 발을 들여도 여기저기 연줄이 생겨나는 곳이 총학, 총여 그리고 몇몇 자생 단체와 특정 대학 특정 반 등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교지의 표지가 처음으로 학부생  블랙캣 마스터에게 돌아갔다. 그다음부터는 의례적으로 학내의 걸출한 인물들에게 주어졌다. 아무튼 블랙캣마스터는 ‘잉여’가 그들을 대표하는 언어였던 무렵까지 소위 ‘잉여적인’ 대외 활동을 10년 초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학내에서 하나님의 어린양, 그의 등장은 12년이었다. 그는 인디 음반들의 표지를 맡고, 힙스터 카페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교지 표지를 두 번, 한 번은 전체 편집 일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규모와 크기의 싸움이기도 했다. 처음 데뷔부터 십 수개의 거대한 그림을 그렸던 그는 조증을 힘입어 그 다음에는 학내의 공사판에 끝없이 늘어진 가림막에 그림을 그렸다. 그 내용은 둘째치고 모두들 거진 십 미터에 육박하는 그 거대함에 혀를 내둘렀고 공사하는 인부들도 (가림막이 낙서되면 순서를 바꾸어 두었는데)그 그림은 손대지 않았고 오랫동안 남았다. 이후에도 되도록 그림끼리 서로떼어지지 않고 붙여진 채 옮겨졌다. 그리고 후술한 바로 알려진 당시에 똑같이 가림막에 그림을 그릴 생각 을 하고 있었던 블랙캣 마스터는(정말 하루 차이였다고 한다) 모종의 동시성을 느꼈다. 그리고 이 동시성은 반드시 병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신 안의 어떤 결함과 누군가의 어떤 돌출이 만나서 평범해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들을 처음 공식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초발의 징조가 있던 날로, 나는 맥주 피처를 사서 그가 주로 거주하는 동아리실 비슷한 곳에가서 맥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을 사 들고 간 까닭은 페이스북에 연이어 흥분조의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존레논과 김연아에서 착안했다는 엄청나다는 우리에게 글을 보여주었고, 그 글은 엄청났는데 내용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해석해서 멱살을 잡고 끄트머 리까지 끌고 갔을 때의 폭발과 그의 사고의 맹렬한 추동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BPD가 서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나는 잘 모르지만, 1형 조울증들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때 처음 경험했다. 그들은 목소리가 괴히 커지고 무엇을 시작하려고 안달이 나며 서로 일을 받으려 하고, 서로 자신의 생산성을 증명받으려고 애를 쓰며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동시에 물 흐르듯 이뤄져 두 명의 조증자는 서로 ‘(이 녀석)천재가 아닌가···?’ 하고 고민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들은 점점 목소리와 리액션이 커져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고성으로 말을 주고받았고, ‘내가 왜 이제야 너를 만났는지!’에 또한 도취되어 이 날의 고유성과 유일성을 찬양하며 이것저것 할 일 계획을 잔뜩 세웠다. 그들은 나와 맥주를 마시는 짧은 시간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들을 구상하며 일을 많이 많이 만들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어린양의 첫 삽화였으리라 짐작한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의 첫 삽화는 예후가 좋

지 않았다. 처음 며칠간은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의 글을 환호하고 칭찬했는데 병증이 커지고 험한 말이 나오자 그에게서 멀어졌다고 들었다.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 그는 조금 풀죽은 느낌이었지만 곧바로 술자리에 복귀했고, 주변인들은 정신병의 존재가 가라앉거나 사라졌음을 느끼며 안심했다.

우리가 서로 알고 “이 새끼···!(벅차오르는 듯이)”하게 된 때가 비로소 14년이었다. 14년의 우리는 서로 흥미를 보이면 책장이 팔랑이듯 거리를 좁혀갔다 멀어지길 반복하는 사이였다. 그해 겨울이었나 학내의 직선 대로가 한창 공사중일 때 그는 가림막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또 발병했다. 그는 매직으로 다 죽여야한다는 글을 썼다. 필체가 흔들렸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는 아니지만, 그는 한동안 지방의병원에 있었다고 했다. 그 후에도 간간이 발병 소식을들었다. 그 즈음엔 나도 더는 블랙캣 마스터라는 이름으로는 불리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만났다기보다는 마주쳤다고 해야 할것이다. 처음 이후 두 번째로 둘이 술을 마셨을 때에는 중앙대에서 하는 J캠프에서 마주쳤고, 그날 술을 많이마시면서 이전에 했던 전시의 전말에 대해 들었다. 그는 그 문제로 많이 속상해하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이의 부추김으로 전시했던 모든 그림을 태웠다는 얘기를 했다. 기록주의자인 나는 경악을 하면서 도대체 어떤 새끼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간섭을 하냐고 토해내듯 말했다. 그는 모두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직접 태운 일’이 정말로 예술가들이 할 법한 일로 비쳐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오오······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나는 화를 냈다. 그것이 우리가 처음 병 이외의 일로 교감했던 일이었다. 중앙대에서 멀지 않은, 그 학교 ‘꿘’들이 자주 가는 지하의 술집에서 붉은 조명등 아래에서 내가 남의 일로 난동을 부리고 그 모습은 또 괴이하게 인상적이었던지 어떤 여자가 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답했고 그 사람은 그렇게 큰 일이고 신경이 쓰이면 둘이 사귀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성을 냈다. 아니, 자기 그림을 제 손으로 태우는 게 무슨 기분인지 아십니까? 잘 아세요?     


그 전시회에 나도 연애했던 친구와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헤어진 상태였지만 계속 만나는 사이였고 내가 친구에게 줄 편지를 베껴 쓰는 사이 그가 유심히, 아니 계속 우리를 쳐다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곳, 테이블이 저마다 다르고 사람들이 힙한 커피를 마시던곳에서 사람들에게 종이를 나누어주며 자신의 그림 옆에 덧붙이던 주인장처럼 앉아 있던 흡연자리로 안내하던 그와 갱지에 허접한 펜을 바투 쥐고 빠르게 편지를 써내려가던 나와 사방 벽에 붙은 그림들을 하나의 분절된 장면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첫 삽화를 시작하던 날, 낡은 노란 철문이 끼익하고 열려서 우리가 마주쳤던 그 때에 우리는 ‘우연히’ 술을 먹고 있었고, 나는 ‘우연히’ 정신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뒷목에서 올라오는 강력한 예감-, ‘이건 조증이다. 빼도 박도 못 할 거대한 먹구름이다’를 예감했고, 그가 전국을 헤매고 돌아왔을 때 애써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 사건들이 내 조증과 만나면서 그에게 시너지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에 우리는 종종 마주쳤는데 한 번은 운동권 전문 술집의 빔 프로젝터로 대통령 선거 결과 프로그램을 보면서 술을 마셨고, 각자의 자리에서 박근

혜가 됐다고 난동을 부리다 각자 돌아갔다. 우리가 만나는 때는 그 외에 그의 소속 집단과 내 집단이 불시에 술집에서 마주친 정도였다.     


나는 늘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 학교를 떠나고 시간이 ᷿ 지난 후에도, 조증이 내 임계를 넘고 통제를 넘은 뒤로부터는 ᷿욱 그러했다. 직장을 잡고 두어 달 지난 어느 목요일 밤에 나는 호᷿의 마음가짐으로 외근처에서 하라는 취재는 안하고 창고에 주저앉아 잔뜩 체리하트니 유창목이니 캄포나무를 모아서 낑낑 버스 타며들고 또 집이 아니라 단골 술집에 갔고, 그의 PC방 알바가 끝나길 기다려 11시부터 그와 술을 먹었다. 한 쪽이 울었던 것 같고, 그의 삼촌이 있는 뉴욕에 가자고 계약서인지 공증 같은 것을 나무에 써서 두 쪽으로 나누어 가졌다. 술을 이빠이 먹고 울고 난리를 치며 술을 시키고 여행을 가자 가자 계획을 늘어놓다가 그림 얘기를 하다가 나무를 막 사람들에게 나눠주다가 조증 얘기를 했다. 전부 끊기고 흐릿한 가운데에 그 말이 꺼내졌을 때 그는 잠시 정지한 듯 보였다. 나는 다음날 예정된 출장을 때려 치우고 집에서 긴 잠에 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동면하는 존재처럼.     

그는 거의 모든 서사에서 예술적인, 혹은 예술가타입의 인간이었다. 그의 코어엔 열등감이 있으나 그것은 비정상된 사람이 정상된 것들에게 갖는 열등감이었다. 일반적인 열등감과 조금 달랐고 조금 닮았다. 그는 드문 코스로 입학했고 그가 학교에서 만나는 수많은 예쁘고 샤랄라 빛나는 세계는 그를 기죽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삭발도 하고 쿠바도 가고 깃발도 따라다니며 대학 내 운동권 집단의 중심 안으로 자리잡았다.그가 바라는 것은 비슷했다. 언제나대비를 이루고 언제나 비교가 이뤄지며 언제나 강렬한 두 가지 색상처럼, 노랑과 검정처럼 양분해 존재했다. 손이 두 개달린 이유처럼 오른편 왼편이 그렇게 극적으로. 그는 왼쪽이 있어야 오른쪽을 사고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그에 대해 칭찬과 갖은 기회(나는 수차례 잡지를 만들자 이걸 하자 저걸 하자 그를 꾀는 일이 많았는데 일이 성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를 주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그도 내게 뭘 그리 같이 하자는 일이 많냐며 핀잔을 주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 아마 대학시절 모 선생님이 “너희는 고전 읽고 잘나가는 사람들 책도 읽고 그래야 되지만 무엇보다 자기 동료, 또래들 작업 봐주고 읽어주고 비평도 해주고 그래야 된다”고 말한 것에 깊이 동의하기도 했고, 그런 맥락으로 나도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도 있지만 역시 그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부터 들었던 불분명한 강렬함에 대해 응당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다.       


과거에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할 때, 보통 상대가 1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아무 글이나 써왔을 때 주로 하던 말이 있었다. 사람마다 쓸 수 있는 정량이 있다고. 이를테면 한 페이지를 써야 글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한 문단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리고 문장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어구는 이를테면 영화 제목 같은 걸 만들 때 어구로 말한다는 얘기였고. “그리고 마지막은” 약간 비장함을 섞어서 말하는 것이다.“한 단어로 말하는 사람이야. 나는 그런 사람을 한 번밖에 본 적 없다.”그러면 조언을 구한 사람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

러지곤 했다. 나는 그가 ‘예외상태’를 ‘예수는 외동딸이다 상처받으며 태어났다’고 쓴 것을 기억한다.     

조현병의 작용이 가지에서 뻗는 가지요, 병자들은 그것들을 가지치기 한다면, 죽순처럼 무작위로 모두 위를 향해 쑥쑥 자라는 그의 조증의 양상은 옆에 거지나 노숙자가 앉았을 때 일그러지는 얼굴처럼 탄성과 동시에 마음을 찌푸리게 한다. 그것이 자라는 속도는 어마어마해서, 분명 이 아이디어를 어제 통째로 따먹었는데 다음날 가보면 벌써 또 무르팍을 넘겨 다른 아이디어가 자라고 있곤 한다.


일본만화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쾌속의 조증, 그는 가장 크고 무거운 조증이다. 나는 너무 빨라서 내가 포착한 것들이 벌새처럼 날아가며 남긴 꽃가루와 같다면, 그는 아주 크고 넓은 것, 그러니까 세계나 인간, 믿음, 몸, 사랑, 종교 등을 섭렵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디어를 포착하고 전개하는 방식은 유사하다. 그는 그만의 글 쓰는 법이, 나는 나만의 작법이 있다. 우리에게 한 아이디어가 다음 아이디어가 될 때까지 시간은 세상에서 제일 짧고 길다. 이 역설적인 시간 감각을 우리는 공유한다. 그와 나는 종종 생각과 판단이 동시에 일그러지곤 한다. 이를테면 수박씨만큼이라도 닮아 보이는것이 있으면 같은 논리로 포섭하는 것. 우리의 착안은 이 A와 저 B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병자의 논리다. 그리고 이러한 착목에서 기이한 창조력이 피어오른다. 아마 고고학 수업 같은 것에서 실제로 돌을 떼어 기구를 만들거나 가래 같은 용도의 것들을 만들 때처럼 우리의 즉흥적인 착상은 퍼포먼스적으로 굉장한 무기가 된다. 예를 들면 술자리에서 갑자기 종이를 꺼내들어 십수 명 사람들을 한 번에 그린다든지 밤을 새워 벽화를그린다든지, 한 번에 50페이지씩 자신의 망상을 써내

려갈 수 있게 한다든지.     


그러나 스마트폰 세계, 인터넷과 SNS상에 즉각적으로 남겨지는 기록에는 정말 취약하다. 왜냐하면 그런 쉬운 남겨짐은 조증의 퍼포먼스를 조각내고, 착상이 언어로 고정되거나 정지된 좌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멋대로인 문법으로 분절된 형태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해석된다. 특히 글로 나열된 형태의 지리멸렬이나 왜곡된 이상사고 등은 그것에 담지한 광기를 그대로 노출시키며, 박제된 언동은 이 사람이 얼마나 이상해졌고 위험해졌는지 알려주며 그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쾌속의 조증을 가진 블랙캣마스터는 사고 비약의 달인으로, A가 B로 다시 a가 b로 연결되는 형태의 사고방식을 가졌다. 장점은 사고 과정이 A~b로 이어져 전체 내용을 전개하는 데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단점은 그렇기 때문에 사고의 비약이 누가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블랙캣마스터가 수박에서 멜론을 연상하기만 하면 그는 수박에서 고양이의 수박색 눈동자를 보고 동시에 수박을강에 던져 버릴 때 수박이 서로 부딪혀 벌건 물이 줄줄 흐르던 것을 떠올리며 초록 수박의 붉은 보색과 다시 줄줄에서 반대편 색의 액화를 연상하며 액체의 모습에서 갈색 운동장에 빗물이 번지듯, 빗물에 점점이 자생하는 소금쟁이와 그것의 다리와 바퀴의 다리를 통치하고 상상은 끊이지 않고 모두

본인에겐 타당하며 설득력있다.


종종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하는지 사람들은 도통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안다. 그라면 이 조증 결론, 조증 사고 과정을 보고

1. 놀란 얼굴을 하고

2. 나를 보고

3. 깨달은 얼굴을 하고 다시 본 후 이윽고 “술을 좀!”하고 외칠 것이다.

그와 나는 결론인 A, B를 말할 뿐이지만, 사람들에게 그 사고의 비약을 설명하려면 설명의 사이사이 그사이에 우리는 지구를 세 바퀴 반이라도 돌고 온 사람처럼 피로해진다. 몇 번의 조증을 겪고 난 후 그는 자신의 고장에서 피자 가게 알바를 하면서 사회에 편입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림을 부탁했는데 그는 “2년만에 처음 그린다” 어쩧다 저쩧다 중얼거리다 A1 종이 석 장을 채워다 주었다. 그런 면모를 목격할 때 마다 종이에 비유하자면 A4에 가까운 그릇의 나는 경외감이 드는 것이다. 그가 그림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고 해서우리 집에 와서 그리라고 주문했다. 그가 그림을 손수 그리는 건 거의 본 바 없기 때문에 구경을 할 요량이었는데 방을 가득 채우는 그림 종이를 보고 나는 좀 즐거워 웃었다. 몇 가지 알아낸 사실은 그는 제일 저렴한 종이(재질이 빤딱빤딱한 것) 아크릴 물감(그 종이에 칠해지기 쉬운), 그리고 매직으로 그리는데 그 이유는 돈이없어서이다. 그가 2번 종이의 그림 사람을 구상하지 못했대서 내가 그린 만화1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2번 종이의 사람은 버둥거리는 자세가 되었다. 그는 <자해장려안하는만화>와<조색기>를 몰래 조금 보고 덮었는데 마음이 아파 못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은, 그러니까 우리 극심한 양극성장애 1형 아이들의 자아를 간지럽히는 그런 말을 우리는 주고 받고 우리는 서로의 그림에서 그런 것들을 목격하고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날 때마다 자기 병이 존재하는것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파도처럼 넘실거리면서 서로의 영역을 간질여서 웃고 말 것이다. 그는 운동excercise을 하는데 운동하는 집단에서 어떤 언니가 그더러 한 단어로 줄여 말하랄 때 “과잉”이라고 했다고 어쩌면 자신의 전적을 모르는 사람도 이렇게 말 할 수 있냐고 학을 뗐다. 나는 그가 과잉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큰 목소리. 과장되어 보이는 반응, 언제나 같은 각도로 찍는 사진, 늘 다른 사람이 머무는 여백, 메이플 스토리 실력, 거칠게 두드리는 청축 스페이스, 돌아가는 눈알, 지나치게 휘젓는 손,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감탄사와 쌍욕, 그러니까 상스러움 그러니까 어떤 우아하지 못함. 붓이 아닌 매직의 휘발하는 냄새와 삑빽 한번에 날카롭게 그어지는 둔중한 선 그가 예측하는 선과 두께 언제나 그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상과 세상과 그러면 일과 셋 사이의 둘은 어딨나요 물어볼 것이 뻔한 그. 그래서 리튬 두 알 품에서 조심스럽게 넘어가는 리튬 두 알. 우리 두 가지 질병으로 얽힌두 사람 그래서 오른쪽으로 도는 등나무와 왼쪽으로 줄

기가 뻗는 칡나무처럼 서로 자라기를 기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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