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절대 다수의 글은 초고다. 작문 훈련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며 몇 가지 습관들이 덧붙여졌지만 기본적으로 아니 근본적으로 내가 적는 글은 초고다. 문단과 문단 사이를 이어가는 과정, 문장이 다른 문장으로 넘어가는 장면 이런 것들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스무살의 나는 이전 문단조차 다시 읽지 않고 다음 문단을 적었고, 그보다 나이가 들자 전 문단을 흝고 다음 내용을 전개하는데 보태기도 하고, 그보다 성숙해지면서 마친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나서 게시하였으며 그보다 조심스러워졌을 때 다 쓴 글을 처음 부터 읽으며 부족한 부분을 조금 채우거나 단어를 바꾸는 식으로 서서히 나아갔다. 블로그 글, 몇가지 시(시쓰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글의 변화나 시를 쓰는 걸 시도하고 배운 이유는 숨기고 거짓말하고 비겁해지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였지만 만화는 그보다 완고하다. 나는 한 번도 콘티를 그려본 적 없다. 내가 그린 모든 만화는 한 번에 그려졌고, 그림이나 연출이 불만족스러워 종이를 뜯어낸 기억은 열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내가 친구들에게 만화 초고를 보여줄 때는 이른바 원화 노트째로 들고 간다. 한 장을 넘기면 다음 장에 다음 내용이 그려져 있다. 중간에 뜯어내면 노트(라고 해야할지 화첩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가 너덜거리다 결국 모든 종이풀이 떨어져 종잇장이 나풀댔을테지만 그런 적이 없어 사용감만 있던 노트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공개되진 못했지만)<춤추는 등> 이후에 왜 만화를 그리지 않아? 사실 한 번 그렸다. <파리대왕>이라는 섬망에 관한 일이었는데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전 처음으로 난관을 느꼈다. 친구에게 보여줬을 때 평도 그저그랬다. 평가가 박해서 만화에 절망한 게 아니다. ‘내가 그릴 수 없는 일이었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개미 선생의 독촉으로 2년만에 다시 읽었을 때 나는 그 만화의 빈약한 서사, 비약된 부분, 생략된 이야기들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기억’으로 저장될 수 없을 거대한 절망감을, 위협을, 혼란과 혼돈을 읽었다. 그의 말따름 ‘무서운’ 만화였다. 만화의 서사가 되었던 원경험은 나의 기억에 안착해 잘 자라고 있다. 나는 자주 이에 대해 생각하는데 그들은 아직 또는 별로 만화로 그려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가끔 내 생각의 안에 들어와 나를 둘러보곤 하는데 크게 간섭을 하거나 주의를 일으키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무섭다. 그래서 만화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달리 그리고 싶은 주제는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초고가 원고가 되는 결정적 원인은 생각이다. 생각이 발생하고 오랫동안 머물며 형태를 바꾸고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그것은 글이든 시든 만화로든 차곡차곡 쌓인다. 글로 나오고자 할 때는 문장이 되며, 시로 쓰이고자 할 때는 그렇게 쓰여지며 그림으로 화하고 싶을 때는 기꺼이 쏟아져내린다. 혹자는 이건 너무 무모하고, 우연에 좌우되며, 변수가 많고, 기복이 심하며, 지속성이 떨어지며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라고 말할 것인데 재미난 건 그 사람들은 실제로 나를 만났을 때에 나라는 인간에게도 같은 인상을 받지 않을까? 라는 점이다.
누구에겐 이것이 능력으로 보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이것이 병으로 보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병에 적응 혹은 극복한 사례로 칠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병에 끌려다니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겠다. 다만 나에게는 상식과 합리, 판단과 적절을 배우게 한 시간과 관계들이 있다. 다양한 이유로, 절절한 우여곡절로 가져다 바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걸 완수했는지이다. 그것은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과거의 내 글이나 기타등등 다른 것들을 봤을 때 ‘오 존나 잘썼다!’ ‘미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이런 생각을 1%정도 하고, 보다 많은 비율로 그것의 구멍 숭숭함과 우스움, 차마 적지 못했거나 능력이 모자라 맺지 못한 것들이 기억나며,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다. 그래서 이유가 있지 않는한 잘 들여보지 않는 편이다. <주간리단>을 연재했을 때 나는 초고이자 완고인 글을 썼고, 편집과 퇴고는 개미선생이 맡았다. 그것이 효율적이었으니까. 그는 편집과 구성에 능했고, 비약된 부분은 어떤 순서를 바꿔 정리할 수 있는지 알았으며, 무엇보다 내 글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월등하게 높았다. 나보다 높았을 것이다. 나는 글들을 다시 보고 자주 ‘이딴 걸…’ 뭐 이런 뒤숭숭한 마음이 제일 먼저 드니까.
그렇다면 초고가 곧 완고인 리단 선생은 편집이나 퇴고를 할 줄 모르시냐, 절대 다수의 글이 초고라면 그는 퇴고한 경험이 없으시냐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와 60편의 시모음집은 편집과 퇴고를 개미 선생과 함께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효율적이니까. 내가 ‘기억’하는 혼자서 한 편집과 퇴고의 작업은 3번이다. 그보다 많은 경험들이 쌓여 퇴고라는 기술을 얻게 되었지만 그것들은 다 일종의 훈련이나 연습같은 종류이다. 첫 번째는 명나라 최고의 양명학 좌파 이지李贄와 대혼돈기 명말청초 대학자 황종희黃宗羲가 우연히 만나 한담을 가장한 대담을 나누는 픽션이었는데, 가히 대학시절 최고의 걸작으로 칭할 수 있다. 문제는 이지의 분서나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을 찾아 읽거나 하는 ‘사전조사’ 도 아니고, 그들의 우연한 만남이 진행되는 스토리의 서막과 대화들도 아니었으며, 그리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다 마침내 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온 인물들이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던 필연을 일말 이해하며 끝나는 장면도 아니었다. 문제는 퇴고였다. 이 시기는 퇴고의 중요성을 절감하던 때였고 언행은 그의 삶이 기록된 정보를 조사하며 ‘생각’해낼 수 있지만, 철학의 영역은 고증이 필요하다. 이지가 뱉은 말은 분서 몇 권 무슨 장에 나오는 것을 인용으로 하며, 황종희의 분노의 지점은 후대의 학자인 누구가 쓴 논문의 해석으로 한다는 각주가 줄줄이 달렸다. 50개가 넘었을 때 더 세지 않았다. 그리고 맞춤법, 그리고 띄어쓰기, 그리고 문단을 적절히 잇고 띄며, 참고문헌을 모조리 적는 것. 그리고 몇 번이고 읽으며 부족함은 없는지 되새기는 것. 그렇게 첫 퇴고를 배웠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퇴고에 재능이 없다.
일단 글쓰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퇴고와 상성이 멀다. 내 경우 퇴고 도중 이상이 생기면 그 부분을 수정하면 되는 게 아니라 문단, 그 문단의 주변 혹은 전체를 뜯어고치려 하거나 삭제하거나 ‘이 글은 아직 쓸 때가 아니군’ 한다. 문제는 ‘내 능력’ 에서는 그런 처리하기 어려운 대형 사고가 되는 것이지만, 편집에 능숙한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이것과 저것, 저 문장의 오류, 이 지점이 짚는 맥락의 혼선을 정리하면 해결할 수 있다 같은 식으로 국소적인 포인트들을 짚어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보이지 않는 지점이다. 퇴고를 의식했던 20살의 때부터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탈고를 하냐면 그것은 일종의 게임 같은 거다. 내가 즐겨하는 게임 중에 Two Dots라는 게임이 있다. 여기엔 많은 색깔과 도형이 나오는데 결론적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는 ‘색맹 모드’가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는 특정 색 계열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색채 감각이 매우 낮다. 색맹으로 진단 받지 않았지만 색약이나 그 스펙트럼에 있을 것이다. 왜냐면 나의 맨눈으로는 색맹 모드가 아닌 투닷츠는 플레이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고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색맹 모드를 패치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완전히 다른 시선이 되거나, 완벽한 편집자의 눈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을 차단한 상태로 짚어본다. ‘차단한다’라…. 그보다는 자신을 부정하는, 깎아내는, 지워내는 과정에 가깝지 않을까? 단어와 병기할 한자, 주석, 맞춤법, 이 설명은 왜 필요한지, 이 단어는 통용되는 것인지, 이 표현은 적절한지,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당연히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글을 쓰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나는 게임이 아니니까 모드를 씌웠다 뺐다 할 수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글을 쓸 때와 정반대인 감정이랄까? 아니 이게 또 웃기게 흡사하달까? 데칼코마늬처럼 정반대에 놓여있지만 똑같은 무늬의 감정을 느낀다. 부서지고,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워지며, 작업에 지쳐가고 점점 망치는 기분을 느낀다. 궁극적인 차이는 글을 쓸 때는 그런 감정이 일어날 수록 고조되고, 격양되며, 고도로 집중하고 짙어지지만 퇴고의 과정에선 지독한 탈력감과 무능력감과 희미해져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의식을 느낀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이것도 나의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신념에 물색하게 결과물은 늘 실패작으로 느껴지고, 엉망이 된 기분만 줄줄 새어나오며 이번에도 망쳤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내야 하는게 원칙이다. 그렇게 쓴 글이 세미나에 실린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했다.>이다. 이것이 내가 직접 해낸 두 번째 퇴고였다.
http://www.zineseminar.com/wp/issue05/til-madness/
세 번째 글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단 충분히 시간이 주어졌기에 쓸만한 주제 하나가 생각나서 그것의 몸집을 키웠다. 그리고 방치하고 살피기도 하며 추이를 지켜보다 마감이 다가올 즈음 대강 골자를 만들어 적어놨는데 글쎄 이 파일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급히 써내려갔다. 4페이지로 길어질 줄도 몰랐다. 간신히 받아적으니 네 시간쯤 지나있었다. 보통 글을 쓰며 1-2시간에 한 번씩 담배를 피우는데 이 글은 그것도 잊을 정도로 너무 몰입해 어지러웠다. 그러나 아직 빌어먹을 탈고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트러블이 다 터졌다. 기계적인 오류부터(내 기계숙련도나 응용력이 낮아서 그렇다) 글자 깨짐에 띄어쓰기 다 틀어지고, 고전을 인용했는데 내가 주로 쓰는 판본의 내용과 검색해 얻은 내용이 상이해 한문을 다시 해석해 새로 써야 했다. 문단을 다시 나눠야 했고, 주석, 한자 병기나 맞춤법같은 건 언급도 않겠다. 문제는 표를 하나 넣는데 그 문제로 개미 선생과 싸웠고, 그 일로 상심해 지쳐버렸다.(아직 마감까지 시간이 남아있다.) 초고를 썼을 때 그가 내게 고조된 목소리로 이 글을 읽으니 어때? 했는데 구멍숭숭이에… 문단과 문단의 이어짐이 빈약하고…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초고가 완고가 되는 이유는 그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끝나며, 모든 생각들이 모든 최선을 다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갖는 자부심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이것이 어떻게 읽힐지에 대한 판단에는 영영 확신이 없을 것이며 이것은 서로 별개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들은 그럼 이번 글은 대체 어떤 모양일까? 라고 궁금해 하실 것이다. 이 초고는 나의 오래된 독자이자 유구한 편집자에게 괜찮은 평가를 들었다. 초고를 그대로 보내버려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퇴고를 했다.
내 손으로 시작된 글을 어디서 마치는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내 생각과 병증이 정했고, 그걸 받아적을 속도가 부족한 300타 짜리 타자 실력과 알아볼 수 없는 흘림 글씨가 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걸스럽게 모든 내용을 기록하려 사고 방법과 글쓰기 방식을 비틀어버린 세월이 정하며, 다시 쓸 기회는 다시 한 번 없다는 마음으로 쓰기 때문에 언제나 초고가 완고가 되어버리는 그런 방식에 조금 사회적 규범과 기준, 형식과 규칙을 매어 준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