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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준 Mar 25. 2024

성실한 건 돈이 안든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는 길

 내 아버지는 건강하고 성실한 분이셨다. 나이키를 신고 싶던 내게 프로스펙스를 사주시는 것이 최선이었던 분이지만, 리바이스 청바지는 대체 왜 그렇게 비싼건지 진심으로 놀라워하시는 분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건 전적으로 아버지 덕분이다. 그런 아버지는 내게 항상 말씀하시고는 했다.


"사람을 칭찬하는 일, 성실하게 사는 일 같은 건 돈이 안들잖아. 우선 그것부터 해봐."


 나도 지금은 아버지가 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신께는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셨겠지만 동시에 조금 머쓱한 말이기도 하셨을 것이다. 물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아들이 인생에서 포기나 좌절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셨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의 그 말씀, 선물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되었고 나는 진심으로 그런 아버지께 늘 감사함을 느낀다. 메이커 신발도, 청바지도, 티셔츠도 없었지만 그것들을 쉽게 포기한 대신 돈이 들지 않는 '성실함'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고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환경에서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내게는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강남에서 나고 자란 내게 길을 걸으면 보이는 전단지들은 물려 받을 것이 별로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겠지만 강남에 좀 이름 있는 아파트가 이미 3억원을 호가하고 있던 그때, 대기업에 입사해서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던 월급 200만원을 받아 100만원씩 매달 저축을 한다고 해도 30년 후에 겨우 저 아파트 하나를 사고 끝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IMF 전 부동산 활황이던 강남의 길거리에서는 너무 쉽게 읽혔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이 되면 나이키도 신고, 리바이스도 입고 싶었다. 집 하나에 인생을 다 바치기는 싫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던 '성실함'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을 의사가 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 아들이 집에 돌아와 '의대에 갈 거예요.'라고 말하면 요즘의 부모들은 보통 장하다거나, 잘 생각했다거나 하는 칭찬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를 집에서 처음 말했을 때 나는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마주해야했다. 강남에서는 이미 흔했던 고액 과외나 비싼 입시 학원은 당연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등록금 부담이 큰 의학 대학 진학 자체가 부모님께는 부담일 것이라는 점은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계속되는 설득과 반대에도 내가 고집을 꺾지 않자, 어머니는 내게 두 가지 조건을 걸고 허락을 해주셨다. 첫번째, '재수는 없다.' 재수학원에 보낼 형편이 아니니 당연한 것이었다. 두번째, '등록금은 장학금을 받아 스스로 해결한다.' 어려운 조건임은 틀림 없었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내게는 별로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고3 수험 생활이 시작됐다.




 요즘 학생들은 잘 들어보지도 못한 말일 수 있지만 내가 수험생일 때는 여전히 학력고사의 시대였다. 그러니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학력고사를 치고 각각 응시할 수 있는 대학교가 다른 시스템이었다. 내가 희망하는 의과대학은 대부분 상반기에 몰려 있었고 만약 하반기로 밀려난다면 공대로 가서 30년 동안 아파트 한 채를 위해 사는 삶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절박하게 만드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고3이 됐을 때 나는 나름 학군지인 서울고등학교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전교 1등 같은 완벽한 수재는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성실함'으로 남은 1년 동안 승부를 내야했다.



 당시 내 생각은 이랬다. 서울고등학교에서 전교 1, 2, 3등을 매번 기록하는 아이들은 타고난 재능이 다른 친구들이다. 운동 선수들도 그렇고, 예술가의 영역도 그렇지만 타고난 재능은 넘어서기가 아주 힘들다. 그럼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족집게 과외' 같은 걸 받으면 어느 정도 그들의 수준까지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내가 가진 건 '성실함' 뿐이고, '성실함'도 꽤 괜찮은 재능이니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에 거는 수밖에 없다. 노력을 통해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치를 나의 모든 것을 다해 달성하겠다. 그리고 나는 그 한 해를 정말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게 모든 최선을 쏟아냈다.


 다행히 내가 원하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한번에 합격했고, 이후 6년 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어머니와 한 약속을 지켰고, 더 다행인 건 6년만에 졸업을 할 수 있었지만 사실 만약 그때로 돌아가 입시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미련이나 후회 같은 건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입시를 끝내고 나서는 떨어지면 그냥 바로 군대로 가야겠다고 생각할만큼 다시 한다고 해도 그것보다 더 성실하고 절박하게 공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들은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단지 1년 간 노력해서 바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한 나를 천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성실함'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쏟아냈을 뿐이다.




 리프팅 전문 성형외과를 개원하면서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은 사실 저 의과대학 입시를 결심했을 때와 비슷했다. '리프팅' 자체가 서양인 중심의, 서양에서 발달한 수술법이고 당연히 새롭게 동양인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고 발전시키는 시간이 필요할 것임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새로운 의술을 창조해낼만한 재능은 없어도 '성실함'에 있어서 만큼은 어떤 의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래서 '리프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원을 하고 나와 같이 '성실함'을 가진 원장님들과 스탭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성실함'을 무기로 매일 연구하고 서로의 케이스를 공부하며 우리에게 맞는 '리프팅' 수술을 발전 시킨다면, 동양인을 위한 리프팅 수술법의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드는 일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성실함'이라는 재능을 믿은 내 판단은 다행히 이번에도 옳았다. 늘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또 각자의 수술을 공개적으로 서로 피드백 하는 등 일반적으로 많이 하지 않는 우리의 '리프팅' 수술 발전을 위한 방법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순식간에 기존의 수술법과의 차별성을 갖추게 해주었고 지금은 우리만의 수술법을 정립하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최소한 동양인에 대한 '리프팅' 수술법에 관해서는 우리가 동북아시아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의료진과 스탭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더 발전된 수술법을 연구하고 고민하며 또 공부해 어제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나, 그리고 우리는 머지 않은 미래에 동양인을 위한 '리프팅'의 교과서를 정립하고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전히 '성실함'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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