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준 Apr 08. 2024

친절한 의사

내가 실력에 집중하는 이유

"의사는 환자에게 친절해야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내게는 저 한마디가 담고 있는 수많은 의미들이 여전히 나를 짓누를만큼 중요한 말이다.


 환자에게 친절한 의사란 어떤 의미일까. 문자 그대로 '친절한', 상냥한 말투와 따뜻한 미소로 환자를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의사도 물론 친절한 의사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에 나는 연세대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 외상센터에서 성형외과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내게 고민의 답을 내려준 환자가 찾아왔다.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규모와 시설, 의료진을 갖춘 원주 외상센터에는 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온갖 케이스들이 쏟아진다. 화상, 수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전공의로 수련을 거치는 동안 나는 정말 놀라울만큼 많은 케이스와 환자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엄청난 업무 강도를 견뎌내야했다. 딱히 특별한 취미도 없었지만 그런 걸 가질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나는 더 많은 수술, 더 많은 케이스를 접하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더 많이 공부하고 경험했던 날들이 그날 내가 그 수술을 맡겠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근거였다.



 응급실에서 호출을 받고 내려가 구급일지와 차트를 받아 환자를 처음 대면했을 때, 사실 차트를 읽어볼 것도 없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선반공이었던 환자는 작업중 손가락 2개가 한번에 절단된 상태였고, 딱 보기에도 절단면이 깔끔하지 않고 가지고 온 손가락의 상태도 좋지 않아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곧바로 수술방을 잡고 뛰어올라가면서 생각했다.


"한번에 2개는 해본적이 없는데, 혼자서 괜찮을까. 아니야 더 지체할 수는 없어. 내 환자니까. 내가 해내야 돼."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수밖에 없지만, 절단된 손가락을 다시 붙이는 수술은 생각보다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선 절단된 부분의 혈관을 연결해야하니 혈관 수술이 가능해야하며, 뼈를 붙이는 수술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신경을 연결할 수 있어야하며, 근육을 연결하고 근육의 위치를 맞춰야하니 그 구조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줄까지 연결해야하는 수술을 손가락이 괴사하기 전 짧은 시간 내에 해내야 하기에 성형외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손가락 하나는 몰라도 2개를 동시에 수술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당시에는 나 역시 경험해보지 못한 케이스였고 수술복을 갈아입고 마취를 진행 하는 동안에도 수술 순서와 연결할 부위를 머릿속으로 계속 그리며 시계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수술방에 있는 의료진 모두가 초긴장 상태가 되어 모두 절단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분위기였다. 곧 마취과 선배가 내게 마취가 완료되었음을 알려왔고 여전히 수술 순서를 되뇌이고 있던 나는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환자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실 수 있게, 모두 최선을 다합시다."


 그 한마디에 모든 의료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머릿속으로 그리던 수술 순서와 연결할 부위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그대로 실행해나갔다. 다행히 수술은 계획한대로 실수 하나 없이 진행되었고 손가락 2개를 모두 연결하고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일단은 모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환자는 퇴원할 때쯤에는 수술한 손으로 식사를 하실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였고 매일 회진 때마다 주먹을 쥐어 보이시며 연신 감사를 표하셨다.



그날 그 환자를 통해 내가 얻은 답은 명쾌했다. 환자에게 친절한 의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하는 것이다. 의사 스스로 실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친절한 것이다. 달콤한 말로 부족한 실력을 채우는 것보다 그 시간에 해부학 책을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친절한 의사가 되는 길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친절해야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지금도 이 말을 실천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 의사가 하는 일, 특히 수술에 있어서 100%를 보장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어떤 환자들은 경과가 매우 좋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환자를 다시 마주해야하는 때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환자에게 진심으로 친절하기 위해 더 성실하게 공부하고 노력한다. 적어도 나를 만난 환자가 다른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을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친절한 의사'이기 때문이다.

이전 03화 내가 하고 싶은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