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0일/ 세상이 너무나 조용히 흘러간다 해도
오늘은 되감기를 한 하루였다.
지하철을 탔다. 퇴근하고 평촌역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 빈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책을 들었지만 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었다. 여러 번 장례식장을 가봤지만 홀로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족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할 지 계속 생각했지만 변변한 말 한 마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하철은 평촌역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밀물처럼 타고 들어왔다.
버스로 갈아탔다. 그 친구의 생기있는 표정이 떠올랐다. 항상 활짝 웃어 가지런한 이가 보였다. 그가 태국에서 자기 몸집보다 큰 배낭을 메고 있던 모습도 떠올랐다. 또 뭐가 있더라. 그냥 웃는 모습만 자꾸 떠올라서 이게 바로 그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담담하게 조문객을 맞이했다. 친구의 남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친구는 영정사진 속에서도 활짝, 정말 활짝 웃고 있었다.
버스를 탔다. 지하철을 타기가 싫었다. 열차를 기다리고, 갈아타고, 사람들의 발들을 보는 게 귀찮았다. 버스의 맨 앞좌석에 앉았다. 어둑해진 도로 위에 승용차들이 붉은 빛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가는 게 보였다. 버스는 신호에 걸리면 쉬고, 신호가 바뀌면 움직였다. 그 친구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슬픔에 잠겨있을 분들이다. 하지만 이 곳이 아닌 저 곳으로 간 친구의 평안을 굳게 바라는 모습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 친구가 이 곳이 아닌 저 곳으로 간 이후의 날들은 변한 게 없다. 일상의 순간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재현되고, 움직인다. 출근길에 보이는 나팔꽃은 어제처럼 오늘도 피어있다. 언젠가 내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갔을 때에도 세상은 오늘처럼 조용하게, 잔잔하게, 때론 시끌벅적하게 흘러갈 거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마주한다. 그 친구가 저 곳으로 간 순간부터 내 일상은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자꾸만 무언가를 되감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