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를 쓴다. 역시 사람은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시간이 많을 때 뭐라도 끼적이는 것인가. 이번 추석 연휴에는 김성중 작가의 소설집 <개그맨>을 읽었다. 김성중 작가의 엉뚱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작은 관찰, 그리고 작은 발견을 좋아한다. 서른이 훌쩍 넘어 다시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고, 구립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글을 썼다는 김성중 작가. 그의 말에 따르면 글이라기보다 '낙서'에 가까운 글이었고, 때때로 글이 아닌 '소설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요새 드는 생각은 날 휘감아줄 무언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금방 무언가에 마음을 주고, 나를 던졌다면 글쎄 지금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이를 먹었다. 나이를 먹어서 조심성이 많아진 탓도 있겠지만, 나를 던졌을 때, 따라붙을 만한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내가 원하는 일이란, 숨어있는 걸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내 곁에 늘 머물고 있는 걸 발견하는 게 아닐까 싶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짙어지면서 크게 애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에 나를 기대고 있는걸까. 사실 나는 '결심'이라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 어찌보면 마음을 주는 것과 같은 말 아닐까 싶지만, 다른 말이다. 마음을 주는 일은 하나일 수도, 서너 개일 수도 있지만. 결심은 하나이다. 그 결심은 기대감을 안고가지 않는다. 조심성보다 대담함을 곁에 두어야 한다. 누가 하라고 떠미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해낼 수도 있을런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이 꽤 중요한 것 같다.
글 쓰기는 고되고, 재미없고, 때론 부끄럽고, 좌절감을 맛보는 일이다. 과거에는 글을 써도 취미생활, 혹은 일기 쓰는 걸 좋아하는 정도의 입장으로 나를 대했고, 상대를 대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내 얘기를 할 때 "계속 글 쓰고 싶다"고 나를 소개했다.(말해놓고도 스스로 어색했음) 공식적으로 나를 그러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은 처음이었는데, 그 이후로도 나는 회사에서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글=정체성"이라고 밝히기 시작했다. 무슨 글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물론 말하고 후회할 때도 생각보다 잦다. '괜히 말했나', '주제 넘은 게 아닌가',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등 자책하는 변명이 두둥실 떠오른다. 하지만 최대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는 말하고, 또 말해본다. 재능이 부족해도, 운이 없어도, 이룬 게 그 뿐이어도 어쩌랴. 나도 모르게 마음을 기울인 일들이 '글쓰기'였는데, 그냥 '하겠다'고 선언하고, 어제처럼, 오늘처럼 쓰는 일을 하는 수밖에. 외장하드에 이렇게 저렇게 쓴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나는 그 글들을 '쓰레기'라고 부르지만, 나에게는 '버리고 싶지 않은' 쓰레기이고, 재활용하면 쓸만한 쓰레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래는 김성중 작가의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