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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히 GOODHI Jan 04. 2021

내가 자연을 이야기하는 방식

굿히의 행복 에세이

나도 자연을 좋아한다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에 함께 스며드는 것인지...

나는 어느새 집안에 있는 화초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는 잠깐의 신혼생활을 대성리에서 시작한 적이 있다.

회색 도시가 그리워져 '향수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고, 문을 열면 바로 앞에 야산이 있어 벌레가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일주일을 넘게 현관문을 열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런 나는 서울의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그 자체였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앞에 있는 야산이 운치가 있다며 좋아했고, 그런 숲을 좋아해서인지 자연과 함께라면 벌레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마인드의 그런 따뜻한 사람이다.


사실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도 내가 자연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저 벌레가 싫을 뿐, 바람이 싫을 뿐, 그냥 깔끔함이 좋은 것뿐이었다.

그런 내게 남편은 그건 자연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늘 일깨워주려 했지만 그때마다 난 늘 반박했다.


"나도 곤충이 신비로워 보일 때가 있고, 선선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내가 좋아하는 자연과 자기가 좋아하는 자연은 다를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방식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서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지 마시라고요."


왠지 자연을 싫어한다고 하면 냉혈인간처럼 별로인 사람으로 느껴져서일까...?

나는 늘 그렇게 내 방식을 설명해왔다.


자연을 평범하게 많이 사랑하는 남편에겐 집안에 화초를 들여놓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화초에 물을 주고 가꾸는 일도 자연스레 남편 몫이었다.

예쁜 화분에 예쁘게 플랜테리어 돼 있는 화초들을 보는 것은 좋아했기에 투머치(too much) 하지 않을 정도만 옆에서 조절을 해줄 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화초를 보는 거에만 익숙했냐면...

몇년전 남편이 보름정도 해외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화초들에게 물을 꼭 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만만해했었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오기 하루 전날...

그동안 예쁘게 놓인 화초들을 볼 줄만 알았지 물을 한 번도 주지 않았던 나의 습관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다음날 남편이 온다는 생각을 하다가 화초에 물을 줘야 한다는 남편의 부탁도 함께 생각난 모양이었다.

이해 못할 수도 있겠지만 연상 작용이 그렇게 적용되었다...  -.,-

그제야 시들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도 이해 안 가겠지만 그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라만 본 것이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뭘 본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할 말이 없다.

그때 시들어 죽어가던 6개의 초록이들 중 하나만 간신히 살아나서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예쁜 모습으로 잘 자라주고 있다.


이것이 나의 30대까지의 모습이다.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반박하며 설명한 것처럼 내 방식으로 자연을 좋아했던 건지... 아님 좋아하지 않았던 건지를...


베란다에 있는 초록이들 (안쪽으로는 더 많이 있다)


40대 후반이 된 지금의 나는...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남편의 취향을 닮아가서일까... 시골이 좋다.

지금의 아파트보단 산과 바다가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니까.

그리고.. 

화초에 대한 마음도 확연하게 바뀐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저 예뻐서 바라만 보는 것과는 다른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난 전에도 자연을 좋아했던 거 같은데...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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