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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Nov 13. 2023

어쩌면 나는

여름이었던가.


두 손을 모으고 "나가주세요" 앙칼지게 외치며 손님을 쫓아내는 SNL의 권혁수님을 보면서, 맞아, 요즘 저런 쓰레기같은 마인드로 장사하는 집들이 은근 많지, 했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내가 그러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 집은 올해로 17년동안 직접 키운 배추를 직접 절여 판매하는 절임배추 농가이다. 하루에 수천박스씩 찍어내는 공장도 아니고, 십만평씩 농사짓는 대농도 아니다. 물량으로 승부하는 것도, 그래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때부터 한 분 한 분 정말 정성을 들여 배추처럼 가꾼 고객들이 쌓였다.


수년 전, 내가 내려오면서 판매는 자연스레 나의 몫이 되었다. 엄마는 예전처럼 전화를 받고 주문을 받는 시간보다 농장이나 작업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내가 절임배추를 판매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기존고객들이 추가해주신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판매소식을 알리거나 스마트스토어에 상품을 올려서 검색을 통해 새로운 분들이 들어오는 방법이다.


기존손님이던 신규손님이건 내게 전화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너무나 감사한 분들이라 곱게 무릎꿇고 두 손으로 공손히 전화받아도 모자랄판에 권혁수 권법을 시전한다.


상세페이지는 꼼꼼하게 읽어주셨나요?

올해는 복잡하게 요청사항을 주시면 주문이 안 되는데 아시나요?

주문은 카카오톡 친구추가를 하신 후에 그쪽으로만 꼭 부탁드리고 있는데요?


오죽하면 전화를 안 받던 우리 엄마가 쟤가 올해만 하고 장사를 안 할 모양인가보다, 하면서 전화를 받기 시작하셨다.


절임배추 선예약을 시작한 첫 날 나는 새벽두시까지 사무실 컴퓨터앞에 앉아 짜증을 있는대로 내면서 주문을 받았던 기억이다.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밀리고 이 일은 나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당연히 실수도 많고 손님들에게도 티가 날 정도로 짜증이 많았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배추때문에 엉엉울고 각성을 했다. (지난 글 참고)


각성모드의 내가 책상위의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갔고, 주욱 찢어서 사무실 벽 한가운데다 떡하니 붙여놓았다. 각성에서 잠시 해이해진 상태에서 다시보니,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뭔가 근엄하며 전투적이다.


요지는 그렇다. 초심을 잃지 말자. 손님들 한 분 한 분께 손편지를 쓰던 나의 초심은 어디에 갔을까. 손님들을 귀하게 여기던 나의 초심은 어디갔을까. 손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것도 계산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얼굴 한 번 본 적없는 나의 무엇을 믿고 이 큰 돈을 보내주신 것일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에 에이포용지 세 장을 채웠던 나이다.


11월 9일 각성을 했고, 그 후로 하루에 열 분 넘는 분들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만 가득가득담아서 상담을 해드린다. 그리고 오늘은 인스타그램에 내 핸드폰번호도 떡하니 써두었다.


늘 "작업중일때가 많아 통화가 어렵습니다. 전화대신 진도농부 카카오톡으로 연락부탁드립니다"하던 내가 언제든 전화주시라고, 통화가 어렵다면 문자라도 남겨주시라고, 그러면 내가 반드시 전화드리겠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적었다.


진심이다.

배추농사는 망쳐도 일년이다. 하지만 고객농사는 한 번 신뢰를 잃으면 십 년도 간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인데 내가 그간 너무나 해이했다. 그렇다고 내가 수십억 매출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잠을 쪼개가며 평소에 부지런히 살았던 사업가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리도 눈멀게 만들었는지.


간절한 마음으로 세 번을 떨어지고 네 번째에 선정된 브런치를 찬밥처럼 방치해둔 나이다. 남에게 있어보이는 그럴듯한 글이 아니라, 조금은 덜 다듬어진 글일지라도 내 날것의 느낌과 반성을 그대로 공유하고 싶어서 브런치에도 자주 방문할 생각이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여, 부디 제게 응원과 힘을 주세요. 그리고 저와 함께 더 나은 우리가 되어봅시다.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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