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첫째 주 비버 이야기
2월 1일 새벽,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한쪽 발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추운 나라 캐나다로, 캐나다에서도 엄청 춥다는 옐로나이프로 가려고 새로 산 방한용 등산화가 이상하게 한쪽만 작게 느껴졌다. 앞 좌석에 앉은 아빠는 묵묵히 운전에만 전념했고 엄마도 긴장했는지 말이 없었다. 보통이면 이거 챙겼냐, 저거 챙겼냐, 엄청 잔소리하셨을 텐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이상하게 한쪽 발만 신발이 꽉 끼는 것 같네. 엄마가 말했다. 벗어서 사이즈를 봐 보라매. 어둔 새벽에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등 불 빛을 몇 번 지나쳐 보내고 나서야 사이즈를 확인했다. 235mm. 나는 250mm인데. 반대편을 벗어서 보니 250mm이다. 엄마도 겨울용 등산화가 필요하다며 색깔까지 똑같은 신발을 산 게 생각났다. 아놔. 한 짝만 엄마 걸 신고 온 거야? 내가 비명을 지르자 엄마와 아빠도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차 안의 볼륨이 폭발하면서 아빠가 급하게 유턴을 했다.
모험은 불안과 함께 시작하는 여정이다. 떠나서 얻을 수 있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안전하다고 증명된 곳을 떠난다. 나는 나의 모험을 도저히 혼자 시작할 자신이 없어서 동행을 구했다. 깻잎 카페에서 밴쿠버까지 같이 갈 동행을 구했는데 신발 때문에 늦어버렸다. 바보같이. (그냥 짝짝이로 신고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발이 너무 꽉 끼어서 포기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갑자기 그런 욕망이 생겼다. 외국에서 한 일 년쯤 살아보고 싶다는. 우연한 기회에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대해 알게 되어 바로 캐나다 워홀 비자를 신청했다. 원래는 호주 워홀을 생각했었는데 캐나다 워홀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인원이 당시 일 년에 800명 정도 되던 때라, 일단 캐나다를 신청해보고 안되면 호주로 가라고 누가 그러길래 일단 신청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요즘엔 2000명 정도인데도 비자받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니.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에 내렸을 때 혼자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어 동행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입국장을 서성거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위아래로 요동을 쳤다. 말도 안 되지만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 총이라도 들고 검은 밴에 욱여넣을 것 같은 공포심이 들었다. 참나, 깻잎 카페에서 일할 곳까지 구해놓고 왔는데 밴쿠버 공항에서 발이 묶이다니. 내가 이렇게 겁쟁이였나. 한참만에 나온 동행은 곧 누군가의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혼자서 사람이 가득한 공항에 앉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넋이 나갔다.
출국 전에 막 캐나다에서 돌아온 분께 달랑 100불짜리 7장을 환전해서 들고 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용감했던 건지 무식했던 건지 아리송하다. 아마 무식해서 용감했겠지. 예약한 숙소에 픽업 요청을 해야 하는데 지폐뿐이라 카트 가득 짐을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서점도 카페도 이른 아침이라 100불짜리를 거슬러 줄 잔돈이 없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참 기웃거리다 환전소를 찾았지만, 환전소는 환전을 해주는 곳이지 잔돈을 바꿔주는 곳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전화카드를 하나 사고 동전을 얻었다. 귀한 동전을 굴려 넣고 숙소로 전화를 했다. 입국 첫날부터 공항에서 노숙할 뻔했네.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엔가 공항 밖으로 나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2월의 밴쿠버는 우산을 쓰기도 뭐하고 안 쓰기도 뭐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곳이었다. 우산을 써도 젖고 안 써도 젖어서 팔이 지치면 우산을 버리고 싶었다. 누가 얼굴 앞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대는 것 같이 늘 온몸이 축축하고 눅눅했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과 밴쿠버 시내를 돌아다녔다. 캐나다 플레이스도 가고 스탠리 파크도 가고 한식당에 가서 술도 한 잔 하고. 옐로나이프를 대비해 털모자도 하나 샀다.
옐로나이프는 무려 북위 62도의 도시로 지금이야 오로라 관광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한 작은 도시였고 밴쿠버에서 만난 누구 하나 내가 그곳에 간다는 걸 부러워하는 이가 없었다. 출국 전에 옐로나이프에 있는 분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뭘 준비하면 좋을지 대화를 나눠봤지만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혼란만 가중되었다.
내복은 꼭 갖고 오라고 하기에 얼마나 춥냐고 물어봤더니 요즘은 이상기온이라 영하 20도 아래로는 잘 안 내려간다는 답장이 왔다. 이상기온인데 영하 20도 언저리라는 것은 얼마나 춥다는 것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상상이 가지 않아 그분께 평소에 어떤 옷을 입고 다니시는지까지 물어봤는데, 그래도 가늠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뭐, 얼어 죽진 않겠지. 나는 미지의 세계로 간다!
밴쿠버에서 떠나는 날 아침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고작 3일 있었을 뿐인데 이 축축함에 질려버렸다. 차라리 뽀송뽀송한 눈밭을 구르고 싶어 졌다. 이런 추적추적함을 벗어날 수 있다면 추위 따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겐 양쪽 다 250mm인 방한용 등산화도 있고 새로 산 털모자도 있으니까.
앞으로 내가 살 집주인이자 내가 일할 레스토랑의 주인 래리가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래리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풍경이 너무나도 생소했다. 여기를 봐도 눈, 저기를 봐도 눈. 온통 하얗고 뽀드득한 눈 천지였다. 지금까지 서울에 살면서 봤던 눈보다 더 많은 눈을 공항에서 올드타운에 있는 집으로 가는 30분 동안 봤다. 검은 건 길이요, 하얀 건 다른 모든 것. 래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주 검고 긴 길을 달렸다.
집에 도착해서 래리의 부인과 앞으로 한 집에서 살게 된 워홀러 두 명,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까지 소개받고 나니 밖이 어두워졌다. 북쪽이라 해가 빨리 지긴 하나보다. 따뜻하고 안락한 침대와 넓은 책상, 흔들의자까지 있는 다락방을 배정받았다. 앞으로 지내게 될 사람들과 이 집과 내 다락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빨간 머리 앤이 그린 게이블즈에 자기 방을 가졌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 거야. 다락방에 작게 난 창 밖의 세상은 눈과 눈 덮인 나무와 눈 덮인 지붕들의 세상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이토록 다른 세상으로 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도착한 다음 날, 집 근처에 더 락 The Rock (Bush Pilots Monument) 이라는 작은 언덕을 소개받았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이었지만 올라가니 멀리까지 보였다. 꽁꽁 얼어 눈이 덮인 호수에 갇힌 올드타운과 높은 건물 몇 개가 삐죽이 올라온 시티 센터까지 보였다. 눈으로 덮인 마을은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호수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나무가 없는 곳이 호수려니 했다.
추위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한국처럼 칼바람이 불어 살이 에이는 추위는 아니지만, 거대한 냉동창고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곳에서 밖으로 나가면 당장은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속 혈액이 느려지는 게 느껴지면서 손발 끝부터 서서히 차가워지는 느낌. 그렇게 오래 있으면 정말 허벅지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이 추워지면 집으로 호다닥 뛰어 들어갔다.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가면 얼었던 콧속에 수분이 녹아내려 항상 코를 훌쩍였다.
허벅지가 터져버릴 것 같은 경험도 인상 깊긴 했지만, 꿈만 같은 순간은 따로 있었다. 옐로나이프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생애 첫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오로라를 노던 라이츠 Northern Lights 라고 불렀다. 오로라가 더 예쁘장한 이름이긴 했지만 시원하게 하늘을 가르는 노던 라이츠도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현실에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아름다운 커튼이 하늘 가득 걸린다. 바람도 없는 잠잠한 밤인데도 끝단이 너울너울 흔들린다. 홀린 듯이 너울 거리는 커튼 자락을 보고 있노라면 손끝의 감각이 무뎌지는 추위도 잠시 잊게 된다. 별안간 코끝에 차가운 비눗방울이 폭 터지면서 퍼뜩 정신이 든다. 좀 전까지 만질 수 있을 것처럼 걸려 있던 커튼이 저 멀리서 흔들린다. 쫒아가면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온 몸이 터질 것 같아 포기한다.
따뜻한 차, 아니 뜨거운 핫 초콜릿이 필요해!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