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비버 이야기
불록스 비스트로 Bullock's Bistro. 올드타운 초입에 위치한 식당으로 비스트로답게 작고 아담하며 굉장히 캐주얼한 분위기를 마구 뿜어내는 곳이다. 옐로나이프에서 5개월을 살았지만 같은 식당에 두 번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외식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다들 워홀러들이라 돈을 쓰는 것보다는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번 돈은 아껴서 여행에 쓰고 싶어 했던 탓인 것 같다.
나 또한 한국에서 가져간 돈이 거의 없었으므로, 보통 저녁은 같이 사는 사람들과 먹었고(식비가 방세에 포함되어 있었다) 쉬는 날에는 친구들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그때는 누구네 집에 모여서 각자 먹고 싶은 요리를 하거나, 만든 음식을 들고 와서 나눠먹고 노는 게 큰 재미였다. 그래도 유명한 곳은 한 번씩 가봐야지 싶어서 로컬 사람들이 추천하는 레스토랑 몇 곳을 찍어놨다 날 잡아서 친구들과 같이 가곤 했는데, 불록스 비스트로도 그중에 하나였다.
온갖 전단지가 붙은 입구가 정신이 사나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재빨리 식사를 포기하고 돌아서 집으로 가는 게 낫다. 저 정도에 정신이 사나울 정도라면 안에서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테니까. 비스트로 안은 바깥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나게 현란하기 때문이다.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사진과 포스터가 빼곡하게 붙어있고, 온갖 표지판과 스티커가 냉장고와 주방을 점령했으며, 여기저기 붙은 생선 모형에는 온갖 나라 지폐가 꽂혀 있다. 뿐만 아니라 천장에는 그동안 방문한 손님들이 남긴 '나 여기 왔다감!!' 메시지의 향연이 펼쳐진다.
비스트로의 모든 공간이 빈틈없이 꽉꽉 차 있는 걸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사장님이 그 공간의 모든 사진과 스티커와 메시지를 사랑하고 장려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방문객의 의무를 다하고자, 천장에 빈 공간을 수색해 한참을 끄적거려 '우리도 왔다감!!’이라고 남겼다. 공복에 하기에는 목과 팔이 고달픈 작업이었다. 우리의 이름과 메시지 옆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름과 메시지가 천장 가득 너울거렸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악어 주의> 표지판 뒤에 적힌 말이었다.
가장 추운 기후에
가장 따뜻한 사람들!
고마워요, 옐로나이프.
최고의 4년을 보내게 해 줘서.
커다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처음 들어보는 음식도 있었고, 비교적 친숙한 음식도 있었다. 우리는 적당히 먹을 만한 것들을 섞어 시켰다. 시킨 메뉴가 다 기억나진 않지만 사향소 Musk Ox 스테이크와 알틱 차 Artic Char 라는 생선은 확실히 시켰던 것 같다.
커다란 접시 한쪽에 스테이크 혹은 생선을 놓고 옆에 건강을 생각해 샐러드를 조금 놓는다. 그 위에 감자튀김을 산더미 같이 올리면 메뉴 완성! 어떤 음식을 시켜도 주인공은 감자튀김이라 다 똑같아 보인다. 사향소는 조금 질기긴 했지만 소스 맛으로 먹을만했고, 알틱 차는 연어와 매우 비슷한 맛이었다. 감자튀김을 밥 삼아 고기와 샐러드를 반찬 삼아, 맥주를 부지런히 마셔가며 외식을 즐겼다.
특이하고도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한국에서 보낸 소포가 와 있었다. 내가 보내준 영문 주소를 엄마가 송장에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옮겨 적은 걸 보면서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벌써 캐나다에 온 지 1달 하고도 반이 지났네. 내가 캐나다에, 그것도 옐로나이프에, 이 다락방에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해졌다.
"야, 밖에 오로라 나왔다." 아래층 친구가 다락방 문을 빼꼼히 열더니 다급한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소포를 뜯다 말고 급히 옷을 껴입고 나갔다. 오늘도 오셨군요, 오로라여. 배가 부르고 등이 따셔서 눈밭을 구르며 오로라를 봤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오로라. 스르륵 왔다가 샤라락 사라지는 초록 커튼의 마술.
불록스 비스트로는 아직도 영업 중이며 매우 인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맛을 떠나서 한국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현지 식재료를 접할 수 있으므로 옐로나이프를 방문한다면 꼭 가볼만하다. 구글로 찾아보니 메뉴 구성이 좀 바뀌었고 가격도 30-40불 정도로 올랐지만, 트립어드바이저 상으로는 한국인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