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나 혼자

심리상담 6회

by 아델리


앉아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상담을 하러 간다. 그날그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렇게 해서 뭔가 해결이 되는 건 맞는 거야? 의문이 든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데, 어떤 변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은 간다. 가서 앉고, 그리고 어떤 말이든 한다. 그걸로 충분해? 충분해. 그걸로 됐어? 그걸로 됐어. 그래도 찜찜한데…?




저는 타인의 배려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아요. 자리에 앉아서 한참 만에 말을 꺼냈다. 배려를 받는 게 자기 연민에 빠져서 변명을 늘어놓고, 상대에게 좀 봐달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배려를 받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배려를 받고 싶지만, 막상 배려를 받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이 감정의 상충이 괴롭다. 이상한 말이지만, 배려를 받는 줄 모르게 배려를 해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나는 음식에 있어서 제한이 많은 편인데,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먹으러 가면 먹기 싫어서 마음이 불편하고, 상대가 나를 배려해서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서 먹으러 가면 괜히 내가 편식하는 어린애 같이 굴어서 상대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배려를 받기 싫으면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좀 받아들이던가, 내 취향을 고수하고 싶으면 배려를 받아들이던가 해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항상 내면에서 의견이 51 : 49로 팽팽하다. 그러니 고민고민하다가 끝내 답을 내려도 시원하지가 않다. 늘 마음이 불편하다.


요즘은 결혼도 반반으로 하자는 세상인데, 혹 타인에게 배려를 하지 않기 위해서 배려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타인을 배려하고, 친구와 가족의 이런저런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어느샌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부탁을 받으면 하기 싫어도 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또는 정말로 하기 싫어서 안 해줄 경우에는 마음이 너무나도 불편해진다. 배려를 하든 받든, 부탁을 하든 들어주든 — 마음속에서 늘 엎치락뒤치락, 나와 내가 맨날 싸우는 형국이니 피곤해 죽겠다.


비단 메뉴 선택만이 아니라, 내 인생에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갈림길에 대해서도 늘 그런 식으로 의견이 팽팽했다. 심지어는 MBTI 조차도 어느 한 성향도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지 않고 51 : 49 정도로 갈려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뭘 결정하든지 간에 주어진 시간제한을 끝까지 사용해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에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한 번 결정을 내리고 나면 돌아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뭐가 됐든 51로 기울어져 있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면 49는 내 인생에 없는 셈 치고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나는 남들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인데(= 에너지 소모), 정작 내가 힘들 때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버텨내려고 한다면(= 에너지 소모), 더 쉽게 번아웃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남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특히 더 꺼리는 특성이 있어 결국 끝까지 부탁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혼자 독자 노선을 걸으며 모든 걸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왜 부탁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까?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중에서




아버지는 원래 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어렸을 때는 그런 부재를 서운해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서, 아빠한테 보여주려고 언제 오시냐고 전화를 수차례 하고 새벽까지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이 든 적이 있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빠는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어릴 때 아빠는 늘 일 아니면 술로 바빴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아버지의 부재와 무능력은 더 심해졌고, 기댈 곳이 없었던 엄마는 고작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기댔다. 그때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엄마와 내가 같이 결정했고, 나중에는 동생을 공부시키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말을 전하며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도 나의 몫이 되었다. 엄마는 어린 동생에게는 이런 사정을 말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시켰다.


중학교 2학년 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괴로웠지만 아무에게도 기댈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학교 담임 선생님과 절친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버티며 살아남았다. 말 그대로 ‘살아남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생 전반적으로, 아무 걱정 없이 기댈 수 있는 어른의 부재가 나의 내재된 불안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면서 나는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기댈 수 없었다. 내가 마음 놓고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수능을 보고 나서 바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녔고, 그 주 주말부터 일을 시작해서 서른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주 7일 일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스무 살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경제적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딱히 바라지도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정서적 어른이 되어야 했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그게 자연스럽게 경제적 어른이 되는 것으로 연결되었을 뿐이었다. 부모님조차 나한테 기대는데, 주변에 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있을 리 만무했다. 좋은 어른의 롤모델도 없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뭐든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나를 자신감이 넘치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봐주었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를 썼다. 나는 뭐든 잘 해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잘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못 박았다. 내가 잘하지 못해서 누군가 내가 하는 일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나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남들보다 뭘 잘 못해서, 부족해서, 유연하지 못해서, 그게 뭐가 됐든 배려를 받거나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도 수치스러웠다.


오래도록 나는 자신을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성인이 된 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왔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받으며 자각한 것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식의 과도한 자주성이 의존성의 뒷면이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내면에는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도움받고 싶은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억압되어 있었다.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대상 | 의존
『사람 풍경』 중에서


스무 살 이후로 나에게는 나를 보살펴주는 부모가 없었다. 사실 그런 부모는 중학생 때부터 이미 없었던 것 같다. 내 삶의 모든 것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고 문제도 혼자 해결하며 살아왔다.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선생님은 부끄러움을 아는 게 성숙한 거라고 말했다. 후안무치가 미성숙한 것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나는 누가 되었든 나를 잘 알았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나를 완전히 알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명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게 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나를 완전히 드러내고 싶지 않다.


선생님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방에 있는 존재들이라고 했고, 부끄러움은 말할 수 있지만 수치심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아직 내 안에 엉켜있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수치심 때문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작은 방이 생겼고, 어떤 행동이나 사고가 그 작은 방으로 이어지면 나는 바로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하면서 돌아 나온다. 그렇게 차단해 버리고,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잘라내 버린다.


그 방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면 내가 나아질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