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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Sep 13. 2017

어쩌면 그게 여행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29


어쩌면 그게 여행

Christchurch International Airport  

New Zealand



잠들면 깨지 못할 것 같아

꾸역꾸역 잠을 참아내며 공항으로 달려와

졸린 눈을 비비며 게이트 앞에 앉아 있는 게

더 이상 설레지 않고 지루하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하루 종일 키위가 굴러다니는 공장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키위를

한 무더기 가져와 노란 키위 잼을

만들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면,

그건 맛있는 여행인지 모른다.



매년 돌아오는 지루한  생일날,
각기 다른 티셔츠를 입은 친구들이 달려와
알아듣지 못할 온갖 언어로 시작해
"HAPPY BIRTHDAY TO YOU"
끝나는 노래를 불러준다면,
그건 아마 행복한 여행이겠지.


혼자 인적 드문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을씨년스럽게 선 낡은 우체통에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할 엽서 한 장을

쓱 찔러 넣는 게 때론 여행인지 모른다.

      


어느 추운 아침, 파도 소리에 잠을 설쳐
잔뜩 부은 얼굴로 텐트를 걷어내고,
거친 바닷바람을 막으며 가까스로 끓여낸

라면을 한가닥씩 천천히 아껴먹으며

말없이 일렁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건,
마음이 따뜻한 여행인지 모른다.


짐을 싸고 또 싸고,
떠나고 또 떠나왔는데도,
늘 뭔가 놓고 온 것 같이 느껴진다면,
그게 진짜 여행인지 모른다.


인생에 모든 게 잘 준비되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된다면,
당신도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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